점심때가 훌쩍 넘어가는데 밥을 못 먹고 있다. 반찬은 이것저것 많은데 차려 먹는 게 귀찮고 싫어서다. 배는 고픈데 눈이 흐릿해지는데도 밥 챙겨 먹는 게 싫어서 빈둥거리고 있다. 홀로 창밖의 비를 바라보며 왠지 모를 애환을 느끼고 있다.
이럴 때 누가 곁에서 정성스러운 식사를 챙겨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혼자라서 딱히 불편한 건 없다. 이혼하고 혼자 된 지 6년이 지났다. 누가 곁에 없는 게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
모든 것은 일장일단이 있게 마련이다. 불편한 것이 있으면 편한 것도 있고, 뭐가 더 좋고 나쁜 건 없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뿐이다.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완벽한 만족이란 무언가가 채워져 꽉 찼을 때가 아니라는 것. 일시적인 ‘등 따시고 배부른’ 충족감은 인간의 상태가 변하면 또 다른 요소들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가득 채우려고만 하면 오히려 결핍에 대한 강박증만 생기게 된다.
무언가를 채워서 만족감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지금 현재 상황에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만족을 대하는 최고의 자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지금 이 배고픔을 잠시라도 느끼고, 밥이 미치도록 먹고 싶어지는 에너지가 가동될 때까지 글을 쓰며 끄적거리고 빈둥거리는 그 자체를 즐기기로.
그 결과는 놀라웠다. 글을 쓰다 보니 잡념이 사라지고, 시장한 기운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한 끼 행복한 식사를 위한 메뉴를 고르며, 몸의 위장과 각 신체 기관들이 원하는 음식을 주문받기 시작했다.
“음식 주문받습니다. 각 장기별로 주문해주세요.”
1번 장기: “난 미역국!”
2번 장기: “난 김치면 돼!”
3번 장기: “생선구이!”
4번 장기: “밑반찬 종류들!”
5번 장기: “난 디저트만 있으면 돼, 과일로!”
결국 임연수구이와 오징어, 도라지초무침, 소고기, 미역국, 그리고 김치와 포도로 완벽한 한 끼 식사를 해결했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혼자 있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고,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는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분위기를 맞추느라 놓치기 쉬운 나 자신의 작은 신호들. 혼자일 때만 들을 수 있는 몸의 속삭임들.
오늘 나는 배고픔을 통해 기다림을 배웠고, 귀찮음을 통해 진짜 욕구를 발견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움이 아닌 자유로움이 될 수 있다는 것, 결핍이 오히려 더 큰 만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혼자 밥 먹기. 그것은 나와 가장 친밀한 식사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