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데, 인간은 일을 하려고 태어난 것인가?”*
어떤 시청자의 이 질문이 내 마음을 깊이 건드렸다. 하루 9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에서, 일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면 인생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그의 고민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최근 구글 인사 담당자의 인터뷰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 꿈의 직장이라 불리던 구글조차 AI 시대에는 개발 인력을 해고하고 있다는 현실. 앞으로 5년 안에 현재 대부분의 직장과 일이 AI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직장에서 보람을 찾고,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확인받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60대 중반 교감 선생님 출신이 허드렛일을 하며 삶의 리듬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일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일까?”*
답은 의외로 명확했다.
**인간은 일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과 매 순간의 에너지들과 공명하며 맛보고 즐기려고 온 존재다.**
우리는 ‘호모 레조넌스(Homo Resonans)’, 즉 공명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삶의 지표도 바뀌어야 한다. “오늘 얼마나 일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맹렬히 공명했는가?”**로 말이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단순한 정신승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공명이 실제로 돈이 되는 시대다. 조회수와 구독자, 즉 트래픽이 경제적 가치가 되는 현실을 보라. 얼마나 맹렬히 공명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보상이 따라온다.
공명이 안 되는 기업, 개인, 관계는 생기를 잃고 사라진다. 반면 맹렬히 공명하는 곳에는 생기가 넘치고, 재미와 사랑, 행복이 있으며, 수많은 일들이 파생된다.
삶의 목적을 “돈 벌어서 살기 위함”에서 “공명하기 위함”으로 바꾸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게 돈이 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공명할 수 있는 일인가?”**로 질문이 바뀌면, 돈과 관계, 모든 것이 풍성해진다.
나는 선언한다. **“나는 놀러 온 존재다. 모든 순간을 맛보려고 온 존재다.”**
이 관점이 바뀌면 삶의 핵심이 완전히 달라진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삶”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삶”**이 된다. 같은 일이라도 목적이 달라져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공명은 좋은 것에만 하는 게 아니다. 짜증, 두려움, 슬픔, 스트레스까지도 모두 ‘생기’로 보고 맹렬히 공명해야 한다. 불편해 보이는 생기라도 공명해주면, 그 생기는 상보적인 에너지를 데려온다.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도 세상과 우주는 모든 것을 보고 있다. 방송국에서 아이돌이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것처럼, 작은 행동도 다 보고 있다. 내가 맹렬히 공명하는 것을 누가 알아주든 말든, 생색내지 않고 진심을 다하면 온 우주가 그것을 알고 보상한다.
성경에서 말하듯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거다.” 진심을 담은 공명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가끔 생각과 현실이 다를 때가 있다. 분명히 “이 사람에게 이렇게 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에서는 다르게 반응하는 경우 말이다.
이럴 때의 정답은 아주 심플하다. **“내가 결정한 것이 맞는 것.”**
생각과 행동이 다르게 나왔다면, 그 행동이 정답이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 생기 에너지가 나를 인도했구나”라고 인정하고 믿어주는 것이다.
어떤 에너지를 내더라도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에너지가 사라지고 무장 해제될 때, 비로소 **무의행(無礙行)** -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행동이 가능해진다.
나 자신과 싸우지 않고 갈등이 사라지면, 통일장이 형성되어 자존감이 생긴다. 어떤 행동을 해도 망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강력한 코어가 만들어지고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잠언서에서 말한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내 길을 지도하시리라.”
나는 이를 “범사에 나를 인정하라”로 해석한다. 친절하고 자비로운 내 품성을 억지로 바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나의 디폴트 모드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디폴트 모드를 온전히 인정하면, 자괴감이나 피해감이 들지 않고 빛을 발한다. 내 친절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우주가 나를 지켜주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망설임 없이 온전한 생기의 공명을 맹렬하게 일으킬 때, 그 증폭되는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내가 일하려고 왔는가?” 대신 **“무엇을 통해 나의 가치, 의미, 삶의 궁극적인 방향을 찾아갈 것인가?”**
당장 일을 그만두라는 게 아니다. 지금 하는 일을 통해서도 핵심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절충하면 된다. 관념이 바뀌면 같은 일을 해도 전혀 다른 의식으로 대하게 되고,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을 수 있다.
AI가 대부분의 직업을 대체하는 시대가 와도, 150세 시대가 와서 할 일이 없는 기간이 길어져도, 공명하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면 두렵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명하며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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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은 얼마나 맹렬히 공명했는가?**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자신에게 던져야 할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