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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Jan 11. 2023

몇 점짜리 엄마인지 알려주는 성적표가 있을까?

검진을 다녀온 날.


임신 39주 0일. 3.69kg, 50cm로 태어난 너. 네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는 이미 숫자들 앞에서 작아졌어. 임신 초기부터 피검사 수치, 초음파로 확인하는 너의 수치 등 주기적으로 확인받는 여러 데이터. 그 수치들이 기준치와 비슷한 날은 마음이 편했다가 조금이라도 적거나 많은 날은 인터넷 검색하느라 잠 못 이루기도 했단다. 특히 기형아 검사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재검사 판정을 받았을 때, 놀란 마음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시간이 지나고 나니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무섭고 미안하고 막막했단다.



임신성 당뇨를 판정받은 날도 그랬어. 흔히 임당 검사라고 말하는 검사를 하고 나서 재검사를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좌절했었지. 그리고 4번의 채혈을 하는 재검사 후, 임신성 당뇨를 판정받고 나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어. 기형아 검사도 임신성 당뇨도 너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왜 이렇게 멀고도 힘들게만 느껴지던지. 너는 만나지도 못했는데 종이에 적힌 숫자들이 이미 나를 엄마로 만들더라. 엄마가 되는 과정은 임신과정부터 구나 싶었어.





네가 태어난 후로도 숫자들은 엄마를 들었다 놨다 했어. 몸무게가 잘 늘고 있는지, 키가 잘 크고 있는지, 뒤집기나 기기 등 마일스톤은 남들과 비슷한 시기에 하는지, 할 줄 아는 개인기는 얼마나 있는지, 분유는 얼마나 먹는지, 잠은 얼마나 자는지 등. 비교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구만 주변을 살피게 되더라. 네가 잘하고 있는 것 같을 때는 육아 자신감이 붙었지만, 조금이라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날은 한없이 불안하기도 했어. 내가 놓치는 숫자가 너에게는 너무나 중요하고 치명적인 숫자일까 봐.



몇 점짜리 엄마인지 알려주는 성적표가 있을까? 흔히 영유아 검진 결과표를 엄마들은 엄마 성적표라고 생각하기도 하더라. 아이의 키, 몸무게, 성장 발달 정도를 말 그대로 검진하는 과정이지만, 내 아이가 평균만큼 혹은 평균보다는 잘해주기를 바라는 게 부모이더라. 네가 잘 크고 있다고 말해주면 내가 잘 키우고 있다고 칭찬해 주는 것 같았거든. 너의 성장 퍼센티지가 몇 점 엄마인지 보여주는 수치처럼 보였어. 그 당시에는 병원만 가면 질문할 거리를 종이 한 바닥에 가-득 채워갈 만큼 잘하고 있는 건지 불안한 마음이 컸어. 감사하게도 의사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네가 잘 크고 있고, 엄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며 격려해 주셨단다. 지금도 엄마는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고 그립단다.





오늘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너와 치과 검진을 다녀왔어. 약 1년 반 전에 한국에서 처음 치과를 갔을 때는 낯설고 무서워서 엉엉 울었는데, 오늘 가보니 정말 많이 자랐더라. 입도 활짝 잘 열고, 치료받는 동안에도 울거나 무섭다는 말도 없이 씩씩하게 잘 받는 모습을 보니 엄마가 엄마로 성장하는 만큼 너도 너의 속도로 잘 커왔구나 싶었어. 그리고 충치도 없고 이 관리가 잘 된 편이라며 지금처럼만 유지하면 되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편해지더라. 그동안 너의 치아 관리에 마음 졸이며 전전긍긍했던 시간이 인정받는 기분이었어. 우습게도 여전히 검진 속 숫자와 글자에 성적표처럼 느껴지더라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숫자로 보이는 엄마의 점수보다 매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엄마의 점수는 너의 표정이 아닐까 싶어. 엄마가 너를 보고 웃어주고, 함께 책을 읽고, 놀이하는 순간에 네가 엄마에게 보여주는 표정은 엄마를 백 점짜리 엄마로 만들어주거든. 백 점짜리 엄마가 무슨 의미가 있고, 그 점수가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거야. 그런데 엄마가 되고 육아해 보니 육아에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필요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이 주기적으로 필요하더라고. 키, 몸무게, 지능 같은 눈에 보이는 숫자로 만들어지는 백 점 엄마는 아니더라도 너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백 점 엄마가 되고 싶구나. 사랑해, 나의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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