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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Jan 27. 2023

지극히 평범했던, 오늘 하루 이야기

엄마이자 아내이자 나였던.

눈을 번쩍 떴다. 손목에 있는 스마트 워치로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7시. 한국 시간으로 오후 10시였다. 지난주부터 목요일 아침에는 영어로 대화하는 모임을 하고 있다.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작성하고 대화 주제에 대해 살펴보며 아침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육퇴 후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인 오후 10시 30분. 나는 육아 출근을 하기 전인 오전 7시 30분. 그런데 육아의 출근과 퇴근은 우리 뜻대로 되는 게 아님을 지난주도 이번주도 실감하였다. 한국에 있는 분은 육아 퇴근이 늦어져서 늦게 시작되고, 나는 아이가 일찍 깨서 아이를 안고서 영어 대화를 나눴다. 새벽 3시가 넘어서 퇴근한 남편을 깨울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엄마 품에 안겨서 영어로 떠드는 엄마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장난치기 바빴다. 우여곡절 영어 대화 모임을 마치고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입혀서 어린이집에 보낼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어젯밤 저녁을 먹고 정리하지 않은 싱크대의 그릇들을 식기세척기에 넣고, 남편 챙겨 줄 얼큰한 소고기뭇국을 끓이고, 나도 밖에 나가야 하니 외출 준비를 했다. 몸은 하나이고 시간은 흐르는데 마음은 급하고 우왕좌왕 바쁘게 아침을 보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 본다. 급한 마음에 아이를 안고 언덕을 달리려는데 쌓인 눈 아래에 있던 빙판을 밟고 미끄러졌다. 철퍼덕. 다행히 안고 있던 아이도 나도 다치지 않았다.



눈을 털어낼 여유도 없이 다시 달렸다. 어린이집의 오전 간식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아이가 맛있게 간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나도 ESL수업으로 향했다. 서둘렀지만 10분이나 늦었다. 다음 주에는 조금만 더 서둘러야겠다. 겨울학기 수업을 들으며 좋았던 기억 때문에 봄 학기도 신청했는데, 역시 맘에 든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기도 하고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게 좋기도 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해 준 덕분에 이런 기회도 생겨서 참 감사하다.


ESL수업이 끝난 뒤에 짐을 집에 갖다 두고 러닝화로 바꿔 신었다. 런데이 앱으로 30분 달리기 도전 3주 차. 1주 차 1일의 달리기 페이스보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속도만 빨라지는 게 아니라 달리는 순간에 느껴지는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있다. 경사진 언덕을 지나가는 것도 한결 편안해지고 있어서 신기할 정도다.



정오가 되면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엄마가 오니 신난 아이의 손을 잡고서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집에 간다. 소복소복 쌓인 눈을 자박자박 밟으며 아이는 한껏 들떴다. 집에 가지 않겠다며 버티는 아이에게 맛있는 간식이 집에서 기다린다고 꼬여본다. 집에 와서 점심도 먹이고 간식도 먹이고 나면 영상 하나를 보여주며 한숨 돌려본다. 영상을 다 본 아이와 조금 놀아주고 책도 읽어주다가 낮잠을 재우고 나면 어느덧 4시다. 요즘 부쩍 낮잠이든 밤잠이든 잠자기 싫다고 버티는 아이의 체력을 이기려면 나의 체력도 더 길러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낮잠을 자기 시작하면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한다. 올해 매일 지리만년일력을 작성하고 있다. 역사 속 오늘, 지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하나를 골라서 포스팅한다. 현재 1월이 끝나가는 오늘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차곡차곡 쌓이는 포스팅을 보고 있으면 성취감이 저절로 쌓인다. 포스팅을 끝내고 책을 조금 읽고 나니 아이가 일어날 시간이다. 어제 아이가 어느 구석에 숨겨둔 붓을 찾아내더니 붓으로 물감 놀이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팔레트에 물감을 짜고 아이가 마음껏 물감 놀이를 하게 해 줬다. 놀이가 끝날 무렵, 아이의 길어진 앞머리도 잘라줬다.



모든 상황이 끝나자마자 그대로 욕실로 이동해서 목욕을 시켰다. 아이는 목욕하면서도 신나는지 참방참방 물놀이를 즐겼다. 물놀이까지 마친 뒤 꿀맛 같은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아이가 영상이 보고 싶다고 해서 하나 보여주면서 육아 후반전, 아니 연장전의 휴식 시간을 즐겼다.


저녁 먹은 흔적을 정리하고 조금 더 놀다가 거실도 정리하고 양치도 하고 꿈나라 여행 준비를 마친 뒤 침실로 갔다. 오늘도 역시 잠이 오지 않는다며 자기 싫다며 온갖 이야기보따리를 꺼내오는 어린이. 내일 또 만나서 놀자고 달래며 아이를 토닥이다가 잠든 척하며 이불속에 쏙 숨었다. 이불속에서 전자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 엄마를 몇 번 찾다가 답이 없으니 혼자 뒤척이던 아이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먼저 뻗어버리지 않으려고 버텼는데, 다행히 성공했다.



잠든 아이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쓰다듬고는 잠자리를 정리해 주고 나왔다. 남편의 야근으로 홀로 아이를 보살피고 집안일도 하고 와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느라 하루가 더 바쁘게 지나갔다. 아이를 재우고 나오니 23시. 하루도 끝나간다. 지극히 평범하고도 치열했던 나의 하루를 돌아봤다. 영어 공부, 운동, 독서, 블로그 포스팅, 육아, 집안일, 글쓰기까지. 글로 쓰면 너무나도 간단한 일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과 에너지는 간단하지 않다.



그래도 하루하루 평범하면서도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는 내가 정말 기특하다. 그리고 아이가 자랄 때까지 한동안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되겠지만, 무뎌지지 않고 싶다. 비슷해 보여도 같은 날은 하루도 없다는 말처럼 오늘은 오늘일 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하루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달리거나 걸을 것이고, 영어책을 펼칠 것이고, 아이와의 시간에 집중할 것이다. 차분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오늘, 그리고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실천한 나의 여유로움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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