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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말과 오는 말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랴.

by 꿈을꾸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을 좋아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는 말이 거칠고 뾰족하면 그에 대한 반응도 고울 리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고운 말을 듣고 싶다면, 먼저 건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누가 어떤 말을 건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의 결을 만드는 사람은 나다. 그러니 다른 이가 사포처럼 거친 말을 건네든 비단결처럼 고운 말을 건네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icons8-team-r-enAOPw8Rs-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Icons8 Team


말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거울이라고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말이 더욱 와닿았다.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습자지처럼 받아들이고, 복사기처럼 뱉어냈다. 특히 그 표현들이 내 아이는 따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수록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배웠다. 때때로 힘들거나 화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곤 했다. 뾰족하고 차가운 그 말은 사라지지 않고 아이의 마음에 남아있다가 나에게 돌아왔다. 아이의 입으로 듣는, 나의 모난 말은 나를 가장 낮은 바닥까지 끌어당겼다. 소중한 나의 아이에게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을까. 엄마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다니. 나의 말이 아이에게는 상처를, 나에게는 후회를 줬다. 심지어 아이는 자신에게 가는 엄마의 말이 거칠어도 언제나 고운 말로 다시 돌려줬다.


남편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편에게 뾰족한 말을 건넬 때마다 남편의 말을 탓했다. 당신의 말이 거칠고 모나서 나의 말도 고울 수가 없다고. 왜 나에게 고운 말을 건네주지 않느냐고. 후회와 죄책감으로 가득한 아이의 대화와 달리, 분노와 답답함이 밀려오는 대화가 많았다. 아이도 남편도 나의 말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많아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말은 달라져야 했다. 남편을 몰아세우기 전에 나부터 변화가 필요했다.


priscilla-du-preez-nF8xhLMmg0c-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Priscilla Du Preez


나에게 고운 말을 하지 않은 이에게도 항상 고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따스하게 안아주는 아이를 위해 부드러운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가는 말과 상관없이 말속에 바르고 고운 마음 담아내기. 화가 나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도. 감정적으로 말을 내뱉고 나서 후회했던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쉬운 건 아니지만, 처음에는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도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식사할 때, 잠드는 순간 등 매 순간순간 나의 말을 다듬었다. 아이와 남편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기 시작하니, 두 사람의 표정도 점차 밝아졌다.


특히 아이의 입에서 사랑을 가득 담은 말이 예전에 비해 수시로 흘러나왔다. 어제는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사랑한다고 말했다. 내가 건넨 사랑이 나에게 더욱 크게 돌아왔다. 엄마의 가는 말이 거칠고 차가워도 늘 따스한 말을 건네주던 아이. 그런 아이이니 엄마의 말이 부드러워지자 아이의 말은 더욱 사랑이 가득해졌다. 나의 작은 노력이 가져온 변화를 보면서 이대로 우리의 대화에 부드러움과 향기가 나날이 더해가기를, 내가 나날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게 됐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노력을 포기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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