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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May 24. 2023

작은 건 집이 아니야.

범인은 바로-


미국에 와서 처음 이 집에 들어왔던 순간이 생각난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어도 뭔가 좁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낡은 가구, 작은 냉장고, 좁은 화장실, 불편한 구조 등 여러모로 맘에 들지 않는 점만 보였다. 깔끔하게 청소한 듯 보였지만, 조금만 둘러봐도 한숨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과연 여기서 2년 동안 잘 지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약 1년 반을 살고 나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물론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 점이 눈에 콕콕 들어온다.

그러나 핫코일 혹은 전기레인지로 요리하는 일이 점차 익숙해지고, 건식 화장실 구조에도 익숙해졌다. 수납장 높이가 너무 높아서 매번 의자를 활용해서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가장 불편했던 점 중 하나는 다용도실이나 현관 신발장 및 수납장이 없다는 점이다. 감자나 양파 등 실온에 보관하는 채소를 둘 공간도, 분리수거나 일반쓰레기를 둘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좁은 부엌이니 바닥에 내려두었더니 항상 눈에 거슬렸다. 신발 정리도 마찬가지였다. 죄다 가리고 싶은 것들이 드러나 있는 일상을 받아들이는 게 참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름대로 요령도 생기고 약간의 흐린 눈을 뜨고 그러려니 하는 여유가 생겼다.      


텅 비어있던 거실에 아이 장난감수납을 위한 수납장이 생기고, 책장이 생기고, 아이 장난감이 늘어갔다. 이웃이 물려주신 트램펄린과 이젤형 칠판이 생기고, 주방 놀이와 카트가 생기면서 거실은 아이의 지분으로 채워졌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는 수시로 여러 장난감을 꺼내고 늘어놓으며 놀았다. 아이의 짐과 흔적이 거실을 장악할수록 내 마음도 좁아졌다. 요즘은 아이에게 정리 놀이를 하자고 꼬드겨서 같이 치우며 복잡해진 내 마음도 정리한다. 그리고 애초부터 원인이 된 아이 장난감도 주기적으로 비우고 나누며 단순화했다.  

   

공간은 한정적이니, 그곳을 채우는 짐이 조금만 늘어도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옷을 사는 일도, 식료품을 사는 일도, 하다못해 책을 빌려오는 일도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마음속 한도를 정했다. 정해진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정량을 생각하며 소비하는 습관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가격이나 할인 행사에 현혹되지 않고, 이 물건이 집에 가면 어떻게 자리를 차지할지 생각하면 덥석 구매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노력 속에서도 가끔 숨통이 턱-막힐 때가 찾아온다.

집이 왜 이리도 좁은가 싶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그 불통은 주로 아이에게 튀었다.

아이는 지극히 아이스럽게 행동하며 노는 것인데, 나는 그런 아이에게 자주 화를 내곤 했다. 어지르지 말라고 잔소리하고 나면, 나는 무엇을 위해 정리하고 화내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작은 건 집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마음이 편안한 날은 아이가 똑같이 어질러놓은 풍경을 보아도 화가 나지 않으니 말이다.

나의 마음이 복잡해서 집안도 더욱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그러니 집안을 바꿀 수 없다면, 마음을 바꾸면 된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여기저기 짐을 쌓지 않아야 한다.

마음이 넓어야 나의 공간도 넓어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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