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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Jun 14. 2023

장난감을 비워도 육아는 채워진다.

비울수록 채워지는 아이러니

아이가 놀고 나서 낮잠이나 밤잠을 자러 가기 전에 거실을 같이 정리한다. 그러나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가거나 내가 피곤한 날은 그냥 혼자서 정리할 때도 있다. 예전에는 아이의 흔적으로 가득한 거실을 보면 한숨부터 나왔다. 어디부터 치워야 할지 감도 오지 않고, 어차피 바로 원상태로 돌아올 텐데 치우면 무엇 하나 싶었다. 다행히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엄마의 말씀처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발 디딜 공간은 생겼다. 그러나 워낙 부피가 큰 장난감도 많았고, 장난감 종류 자체가 많아서 전체적으로 답답한 느낌이 떠나질 않았다. 집에 있으면 숨이 막혔지만, 육아의 지루함을 핑계로 아이의 장난감은 늘어만 갔다.


미국에 오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의 짐도 거의 원점으로 돌아왔다. 책도 장난감도 옷도 최소한으로만 챙겨 왔다. 이것만으로 어떻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하나 고민이 컸다. 그런데 아이와 보내는 시간 속에서 많은 장난감이 빠졌어도 시간은 잘 흘러갔다. 돌아보면 장난감이 가득 있을 때도 시간이 마냥 잘 가지는 않았다. 이곳에서는 아이와 함께 밖에서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딱히 하는 놀이가 없는데도 아이는 좋아했다. 꽃도 보고 나뭇잎도 보고 모래도 만져보며 자연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간식 하나 챙겨 들고 동네로 나서면 걱정이 없었다. 무료로 운행되는 셔틀버스를 타고 동네 구경도 하고, 유아차에 태워서 운동 겸 산책을 하기도 했다. 책이 필요할 때는 도서관에 가서 읽고 빌려올 수 있으니 부족함이 없었다.



어느덧 아이가 세 돌이 지났다. 미국에 온 지도 1년 반이 넘었다. 이웃께서 나눠주신 책 덕분에 한국어책과 영어책 모두 넉넉해졌다. 책을 더 사주고 싶은 욕심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래도 이만큼 있으면 됐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있는 책이라도 매일 꾸준히 읽어주는 게 더 중요하리라. 그리고 장난감도 두 돌, 세 돌을 지나면서 선물해 준 것과 이웃께서 주신 것들까지 더해져서 제법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잘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은 수납장에 숨겨뒀다가 꺼내주면 새로워하고 좋아하니, 장난감을 새로 사지 않아도 충분했다. 가끔 엄마 욕심 혹은 호기심에 사고 싶은 장난감이 생겨서 새로 사긴 했지만, 사고 나면 아이의 관심은 금방 사라졌다. 그걸 정리하고 수납하는 에너지만 더 필요할 뿐이었다.


아이는 어떤 책이나 장난감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이 있든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했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 아빠가 몸으로 놀아주는 시간, 엄마와 함께 만드는 요리 등 아이는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인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수건 하나, 이불 하나로도 즐거워하고 동네 달리기만으로도 행복해했다. 그럴 때마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떠올리게 된다. 아이의 발달을 위한다는 이유로 책이나 장난감 등 여러 물품을 잘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것을 비워내더라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채운다면 아이의 발달은 충분히 잘 이뤄진다고 느꼈다.


장난감의 양과 종류를 비우고 육아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집이나 기관에 다녀와서 갖고 싶은 게 생기더라도 신중하게 판단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기까지 가더라도 결제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나면 그게 없어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여전히 나의 장바구니에는 갖고 싶은 장난감이나 교구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그걸 담는 빈도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점점 나아지리라 믿는다.



아이도 다른 곳에서 가는 날이면 새로운 장난감과 노느라 시간을 잘 보냈다. 집에서도 장난감 대신 같이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채웠더니, 아이와 나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무엇보다도 거실을 정리하는 부담도 확 줄어들었다. 아이가 아무리 어질러서 엉망이 된 듯 보여도 금방 정리할 수 있었다. 장난감을 비웠더니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여유가 생긴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이 소중한 여유와 공간을 다시 채우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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