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살이가 힘들고 외롭다면, 일단 걷자.
22년, 23년, 24년, 25년. 올해도 봄이 왔다. 이곳에서 보내는 모든 계절이 아름답다. 하지만 그중 내 마음이 가장 두근거리는 계절은 봄이다. 겨우내 하얗거나 앙상한 채로 있던 풍경에 생기가 차오른다. 작은 싹이 땅이며 나무며 곳곳에서 얼굴을 드러낸다. 나도 여기 있다고, 겨우내 이 순간만 기다렸다고. 자기의 생명력을 뽐내듯 여기저기 터지는 초록빛이 나에게도 깨어나라고 톡톡 두드려준다.
추운 겨울을 지나는 동안, 돌돌 말아 쏙 들어간 거북이처럼 지냈다. 새가 지저귀고 햇살이 따사로우니, 몸과 마음을 쫙쫙 펼치고 탈탈 털어내어 밖으로 나간다. 도시락, 텀블러, 종이와 펜을 챙겨본다. 어디든 앉아서 풍경을 구경하고, 소풍 온 기분을 내며 간식을 꺼내먹고,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글을 끄적이거나 그림을 그려본다. 아이와 민들레를 관찰하며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풀잎이나 꽃잎을 주워서 글자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한껏 깨운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최소한 4계절을 함께 지내봐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지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도 그러한 듯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면서 이 지역이 보여주는 매력에 점점 빠져들곤 했다. 내가 모르는 매력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재미가 있었다. 이웃들과 각 계절에 맞는 활동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 봄이면 꽃놀이, 산책, 놀이터를 찾았다. 여름이면 물놀이, 분수 공원, 호숫가 등을 찾았다. 가을이면 단풍놀이, 산책, 놀이터를 찾았다. 겨울에는 눈놀이, 실내 체험 장소 등을 찾았다. 겨울을 제외하면, 많은 날을 산책하거나 놀이터에서 놀면서 보냈다.
그중 봄은 어디를 가도 좋은 계절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본 봄이 반갑다. 올해 겨울도 잘 버텨내고, 이렇게 봄을 맞이하느라 고생했어. 추운 겨울을 잘 견뎌냈으니, 이제 따스한 봄을 너에게 줄게. 이 봄처럼 화사하고 아름답게 너의 날을 채워봐. 어디든 가도 괜찮아, 언제든 떠나도 괜찮아. 그렇게 봄이 나에게 말하는 기분이 든다.
한편 봄은 나에게 어서 이 봄을 즐기라고, 이 봄은 금방 지나간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비가 오면 다 져버릴지 모를 꽃, 금방 뜨거워질 햇살 등은 봄이 더욱 짧고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보내는 4번째 봄을 맞이하면서 반갑고 설레고 들뜨는 마음도 크지만, 금방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기도 한다.
여기나 한국이나 봄 풍경이 거기서 거기지 싶다가도, 봄이 되면 향수병이 도지기도 한다. 친구들의 벚꽃놀이 사진을 볼 때면, 나도 벚꽃이 흐드러진 길을 걷던 순간이 그립다. 겹벚꽃이 가득했던 동네 산책로도 그리워진다. 동네마다 피는 꽃이 다르고, 풍경이 다르니, 같은 한국이었어도 풍경은 달랐을 텐데도 나만 다른 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이곳에서 내가 좋아했던 풍경들도 한국에 돌아가면 그렇게 그리워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한국의 봄이 너무나 그리웠다.
산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봄을 좋아한다. 해외에 산다는 게 행복하다가도 낯설고 외롭게 느껴지는 날이면 걷는다. 계절을 가득 담고 있는 풍경 속에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지금 여기에 집중하게 된다. 해외에 살든, 한국에 살든, 어디든 괜찮다. 그 속을 살아가는 나와 나를 둘러싼 풍경을 놓치지 않는다면.
올해 봄도 여전히 아름답고, 살아있다. 이 봄을 즐길 수 있는 나의 감각이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음에 감사한다. 해외 살이에 대한 온갖 불안과 불만이 싹을 틔울 때면, 봄의 생명력 같은 초록빛 싹을 틔우려 노력해 본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저 흘려보내고만 있을 것인가.
일단 걷자. 풍경을 바라보자.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