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속 같음, 같음 속 다름.
"너, 돌놈~!"
어릴 적 무리와 다른 점이 있는 친구에게 장난치거나 놀릴 때 '돌놈'이라는 말을 쓰던 기억이 난다. 네이버 오픈 사전에 의하면, '돌놈'은 따돌림을 당하여 혼자인 사람을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혼자인 사람, 혼자만 다른 사람,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 정확한 의미는 모르고 썼던 단어이지만, 사전 속 의미로 쓰였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공감이 된다.
'다름'과 '같음',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에 속할 것인가를 늘 고민하며 산다. 나만 '다른' 사람이 되어 혼자가 되진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조금만 튀거나 다른 사람에게 '돌놈'이라고 놀렸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어린 마음에 모르고 썼던, 무심코 썼던 '돌놈'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큰 상처였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흔히 다양성의 나라, 문화나 인종의 용광로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의 경쟁력 중 하나를 다양성으로 보는 이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한민족의 나라라고 말한다. 공통된 혈통, 문화, 언어 등으로 끈끈하게 엮인 유대감을 애정하기도 한다.
'같음'의 나라에서 살다가 '다름'으로 가득한 나라에서 지내보니, 다름 속 같음, 같음 속 다름이 자주 느껴진다. 그것은 어떤 날은 매우 재밌고 신선했다가 어떤 날은 불편하거나 낯설게 느껴진다.
아이는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백인, 흑인 등 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을 만났다. 한동안은 아시아인이 아닌 사람이 말을 걸면 잔뜩 겁을 먹고 내 뒤에 숨거나 울곤 했다.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그들이 아이에게 귀엽다고 인사를 건네거나 말을 걸며 다가오면 아이는 질색하며 소리치거나 도망쳐버려서 그 사이에 낀 나는 머쓱해지곤 했다. 아이가 수줍음이 많고 낯을 가리는 편이라 그렇다며 어색하게 그들에게 아이가 왜 저렇게 하는지 상황 설명을 하면 당황하던 그들도 웃었다.
'다름'을 낯설어하던 아이도 매일 오며 가며 만나다 보니, 이제는 딱히 '다름'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가 가끔 묻곤 한다. '엄마, 왜 저 이모는 머리카락이 노란색인데, 나는 검은색이야?', '엄마, **엄마는 왜 피부가 다른 색이야?' 그리고 기관에 다니며 다양한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아이도 '다름'과 '다양성'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하루는 '김가루'를 섞은 밥을 도시락으로 싸줬다. 동글동글 귀여운 주먹밥이라도 해줬으면 달랐을까 하는 후회가 여전히 드는 날이다. 아이 도시락 속 하얀 밥과 검정 김가루 등이 섞인 밥을 보고서 같은 반 아이 중 몇몇이 'yucky'라고 말하며 수군거렸다. 더욱 마음이 아팠던 건 이 일이 있었던 날에 바로 알게 된 게 아니라 며칠이 지나고서야 아이가 울면서 속상했다고 말한 것이다. 친구들이 자기 도시락을 보고서 그렇게 말해서 너무 속상해서 밥을 먹지 않았다고. 그날 아이가 거의 먹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 도시락의 답을 알고 나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선생님께 여쭤보니, 그 상황을 보고 있었던 터라 바로 지도했고, 우리 아이에게도 그런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필요한 태도에 대해 알려줬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위로를 건네주셨다. 그림책은 다양성으로 가득하다. 다양성을 주제로 한 그림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그림책이 삽화 속에서 '다름'을 녹여내고 있다. '다름'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 마음을 도닥여주셨다. 그리고 아이 나이 또래가 '다름'과 그에 대한 태도를 배우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아이들은 자신이 가져온 도시락에도 그런 적이 있다며 나에게도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이 외에도 이런저런 상황을 겪으면서 달라도 괜찮다고, 다양해도 괜찮다고 끊임없이 알려주고 배우는 기회가 많았다.
아이가 눈으로 보이는 '다름'을 인식하고, 그것에 익숙해지거나 궁금해하는 동안,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름'을 느끼곤 했다. 일상 속 아주 작은 부분부터 전체적인 사회 시스템까지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이나 문화와 다른 것이 가득했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을 따라야 하는 걸 알면서도 4년 차가 되어도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기도 하다. 아플 때 약국이나 병원에 가는 방식, 외식할 때 식당에서 주문하거나 계산하는 방식, 사람이 많은 곳에서 줄을 서거나 시설을 이용하는 방식 등 무심코 원래 하던 대로 하다가 '아차'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럴 때는 어떻게 하는지 하나씩 '다름'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과정은 여행하는 듯 즐겁다가도 일상 유지에서는 피로감을 주곤 했다. 익숙하고 편안한 '같음'으로 가득한 한국이나 한국인만 찾게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접점'이라고는 없을 듯한 '다름'도 결국 알고 보면 '같음'이 있음을 찾아가고 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은 결국 같거나 비슷하다. 외눈박이 마을에서는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다름'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처럼 어디에 있는 가에 따라 우리의 모습이 그저 '다른' 모습처럼 보일 뿐이다. 먹고 자고 살아가는 근본은 다르지 않다. 젓가락으로 먹든 포크로 먹든 손으로 먹든 '식사'를 해야 살 수 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를 '돌놈'처럼 대하지 않는 태도, 그게 필요할 뿐이다. '아, 너는 그렇구나. 나와 다르구나.',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저럴 수도 있구나.' 그 마음이 없다면, 어디에 살든 누구를 만나든 '다름'이 불편할 지도 모른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 '나' 그리고 '너'의 '다름'과 '같음'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달라도 괜찮다. 다양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