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야 보이는 것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온통 처음이다.

by 꿈을꾸다

아이가 아팠다. 여름에 살짝 열이 났던 것 외에는 건강하게 잘 지내줘서 아이가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이가 기대하던 방학식을 하루 앞두고, 아이는 고열 상태가 되었다. 방학식 행사로 예정된 진저브레드 하우스 만들기와 파자마 데이를 가지 못하게 되어서 연신 속상해하면서도 그걸 크게 속상해할 힘도 없을 만큼 아파 보였다. 해열제를 먹어도 미열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아이의 몸 상태는 나빠져만 갔다. 콧물과 코막힘이 더해지고, 오한과 몸살이 더해지고, 기침이 심해져서 누워서 잠을 자지 못할 지경이었다. 병원에 데려가서 확인받은 아이의 상태는 A형 독감이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이렇게 아팠나 싶을 만큼 아이는 힘들어했고, 나는 마음이 힘들었다.


와중에 쇳조각을 밟고 터진 타이어는 수리 날짜가 한참 남은 터라 아이 약이 떨어져서 사야 할 때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아이의 건강도 찢어지지 않은 말짱한 타이어도 어느 하나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픈 아이에게 먹일 약을 사러 나가는데, 김종길의 <성탄제>가 떠올랐다.

(전략)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날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꿈을꾸다(고열).jpg


아이가 아프면서 열 보초를 서느라 일주일을 잠을 설친 탓인지, 덩달아 나도 아프기 시작해서인지, 그저 감정 과잉 상태인지 이 시와 엄마 생각에 눈가가 시큰해졌다. 지난해 갑상선 수술을 하던 때에 내가 아픈 것이 다 자기 탓이라며 연신 짠해하던 엄마의 얼굴과 손길이 떠올랐다. 퇴원 후 만난 아이가 이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냐며 걱정스럽게 묻던 모습도 떠올랐다. 나는 아이를 위해서도 엄마를 위해서도 건강해야겠구나 싶었다.


살아갈수록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건강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몸 상태가 나빠지면 마음 상태도 나빠지고,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수없이 해왔다. 숙면, 건강한 식사, 운동, 충분한 수분 섭취 등 사소해 보이지만, 하나라도 챙기지 않으면 건강은 바로 신호가 온다.


대체로 그렇듯, 아이가 낫기 시작하면 엄마와 아빠는 아프기 시작한다. 아이는 해열제가 필요하지 않고, 열 보초도 필요 없을 만큼 건강해졌다. 그러나 나는 해열제를 먹어도 39도인 상태가 이어지고, 처방받은 독감약을 먹고도 끙끙 앓아야 했다. 그나마 나보다 아직 덜 아픈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동안, 이불을 둘러쓰고 누워서 낑낑거렸다. 그런 순간이면 늘 엄마가 떠오른다. 내가 아이한테 해줬던 모든 것은 어쩌면 내가 엄마한테 받아왔던 모든 것이다. 이렇게 아파서 누워있으면 죽이며 약이며 챙겨주던 엄마의 손길은 따스했다.


그러다가 문득 마음이 철렁했다. 아이가 아픈 뒤에 내가 이렇게 아픈 것처럼, 분명 엄마도 아프실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기억이 없다. 내 기억 속에는 아픈 엄마가 없었다. 엄마가 편찮으신 적 없이 건강 체질 그 자체이셨던 걸까. 아니면 아픈 엄마를 헤아리지 못했던 철이 없던 딸이 이제야 엄마 걱정이 되는 것일까. 엄마가 아플 때는 누가 엄마를 챙겼을까.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사과 몇 조각을 먹고 약을 먹고, 따뜻한 물을 마시고 비강 스프레이와 프로폴리스 스프레이 등 챙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차근차근 혼자 챙겼다. 내 건강은 내가 챙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엄마도 그러셨을까. 너무 궁금해졌지만, 차마 물어볼 용기는 없다. 엄마의 답을 들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수시로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는 이럴 때 어땠을까, 어떻게 이런 시기를 지났을까, 어떤 마음으로 나를 보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속에는 언제나 나밖에 모르고 엄마에게 상처를 줬던 철부지 내가 있다. 그때는 엄마는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만 알았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도 그저 한 명의 여자이자 사람이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다 어렵고 낯설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섯 살의 엄마도, 열 살의 엄마도, 마흔 살의 엄마도-

엄마는 아이가 몇 살이 되든지 처음이라는 사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온통 처음이다. 엄마로도 처음, 딸로도 처음, 아내로도 처음, 오늘 하루도. 그러나 변함없이 돌아올 듯 당연히 여기거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곤 한다. 아프지 않은 것도, 고장이 나지 않는 것도,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비록 독감으로 끙끙거리고 있지만, 그나마 나아져서 이 글을 쓸 수 있는 지금도 정말 감사하다. 아이는 아팠던 만큼 더 튼튼해질 것이고, 나도 그럴 것이다. 어떤 고통과 나쁜 일이 나를 찾아와도 이 또한 지나감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도 건강해졌고, 타이어도 튼튼한 새 타이어로 고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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