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얹혀 지내는 하숙생이 돼버렸다.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나만의 살림살이를 챙겨서 새로운 공간을 채우게 됐다. 냄비, 프라이팬, 그릇, 수저부터 책, 옷, 신발 등 점차 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살아본 원룸이라는 공간은 기본으로 제공된 옷장, 서랍장 등 가구만으로도 좁게 느껴졌다. 거기에 책상, 좌식 의자 등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들이 더해지니 나는 집에 있는 것이 답답했다. 첫 타지 생활과 원룸 생활은 나에게 외로움과 우울함을 전해줬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지워보려 매일 이것저것 잔뜩 먹었고 몸무게도 늘어나고 건강도 상했다.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난 뒤에 원룸이 아닌 투룸으로 이사를 했지만, 나의 생활 범위는 원룸과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몇 년 사이에 줄어들지는 않고 계속 늘어나기만 한 짐들 속에서 나는 얹혀 지내는 하숙생이었다. 누군가 초대할 엄두도 못 낼 만큼 집은 어수선하고 엉망진창이었다. 사정상 후배를 하루 재워줘야 했는데 여기저기 쌓여있는 짐으로 채워진 짐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부끄러웠다. 후배도 농담처럼 ‘우와! 짐이 정말 많네요.’라고 했지만,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었기에 짐을 비워야겠다고 결심했었다.
문제는 결심하는 순간은 주기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결심만 해댔을 뿐, 짐을 늘기만 했다. 근무하면서 받은 교무수첩, 업무 자료, 수업 자료, 연수 가서 받아온 연수 자료, 연수 책자, 여전히 쌓이고 있는 티켓, 팸플릿 등. 오히려 쌓이는 짐의 유형만 다양해졌다. 저장강박증이라는 말은 몰랐지만, 나는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에게 필요해질 것이라는 생각과 버리기 아깝다, 소중한 물건이다는 생각 등으로 짐은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큰 짐이 되었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을 잘못 활용하는 사람처럼 무엇이든 챙겨두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쟁여둔다는 말처럼 생활용품이나 비상식량들도 집에 쌓아두면 든든하다고 느꼈다. 가끔은 이렇게 쌓아둔 것이 없으면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미니멀 라이프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 맥시멀 라이프로 살아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안정감이나 행복감을 느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점점 집에 가는 것이 편안치 않고 행복하지 않았다.
흔히 원룸 이사는 1톤 트럭으로 하는데, 이사를 할 때마다 짐이 늘다 보니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내 차에도 짐을 가득 나눠 실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원룸, 투룸을 지나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나서 다시 이사를 나갈 때에는 어마어마하게 짐이 늘어버렸다. 그러던 중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 동안 남편과 함께 지내기 위해 장거리 이사를 해야 했다. 이사 견적을 내러 온 업체분은 집을 휙 둘러보고는 잔짐이 많아서 5톤 트럭 하나로 부족할 것 같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사모님, 이사 전에 짐 정리하세요. 버리는 것이 돈 버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심만 반복하던 나의 비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