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싶지 않다.'에서 '남기고 싶지 않다.'로 바뀌기까지.
내가 살던 아파트는 방 2개, 앞뒤 베란다, 거실, 주방까지 작지만 나름대로 공간이 다양한 곳이었다. 그런데 정작 다양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각양각색의 짐이었다. 특히 방 하나는 짐으로 가득 차서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창고가 되었다. 이사를 앞두고 이 창고를 제일 먼저 비우기 시작했다.
케케묵은 교무수첩, 학습지, 연수 자료, 상담 자료 등 언젠가 다시 보거나 필요하겠거니 모아뒀던 것들을 비워냈다. 정리의 기준으로 보통 1년 또는 2년으로 잡고, 그동안 찾거나 쓰지 않으면 비운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가진 것들은 대부분 2년은 훌쩍 넘긴 것들이 많았다. 자리만 차지한 채로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먼지만 쌓여왔다. 특히 정기구독을 신청해서 받아보던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는 책장 속에 장식품처럼 꽂혀있을 뿐 완독을 한 것은 거의 없었다. 구독료가 아까워서 차마 비우지 못하고 바리바리 싸다니는 것 중 하나였는데, 크게 마음을 먹고 판매도 아니고 무료 나눔을 실천했다. 이미 봤거나 보지 않았지만 책장에 보관만 하던 책도 알라딘이나 YES24 등을 활용해서 중고로 판매했다.
물건을 하나 두 개 비우는 것으로는 티도 나지 않을 만큼 공간은 방치된 상태였다. 임신 후기여서 거동도 힘들었지만 비움을 멈출 수 없었다. 막상 시작한 비움은 제법 중독성이 있었고 비우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왜 그동안 이렇게 이고 지고 살았을까 싶을 만큼 큰 의미가 없는 물건들도 많았다. 나의 시선도 변화가 생겼다. ‘버리고 싶지 않다.’에서 ‘남기고 싶지 않다.’로.
내가 비움을 하며 주로 이용했던 공간은 당근 마켓이다. 당근 마켓은 중고물품을 자신의 동네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다른 방법들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나에게는 이 어플이 접근하기가 쉬웠다. 무료 나눔을 하기도 하고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하면서 나의 물건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다시 쓰임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기 시작하면 대체로 물건을 비우기 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무작정 다 버리기에는 지구에게도 물건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의미가 없어진 물건이지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물건을 비우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시작이었다. 나의 추억, 정보 등을 이유로 차마 놓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음으로 놓아주었다. 언젠가 필요로 하겠지라고 기대한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고, 나에게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그 도움은 딱히 필요로 하는 순간이 없었다.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고 미뤄뒀던 짐들도 나중은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미루고 미뤄왔던, 고향에 남겨져 있던 나의 짐에 대한 미련도 덜어졌다. 남동생에게 말했다.
“모두 불타서 사라졌다고 생각하겠다. 걸리적거린다면 언제든지 내 짐을 비워도 좋다.”
비움이 시작되면서 남기고 싶은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도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