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어떤 삶일까.
비움을 시작하면서 버리고 싶은 것보다는 남기고 싶은 것, 나에게 중요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 등 ‘나’를 기준으로 다시 내 공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저장강박증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가치판단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의 손상을 떠올려본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이 중요한지 남기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인지 판단하고 결정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면서 그와 관련된 책, 영상 등을 많이 찾아봤다. 다양한 사례와 방법을 접하면서 의지도 다져보고 부러워도 했다. 다들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소신이 뚜렷하고 그것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곤도 마리에’의 책과 영상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집을 비우기 전에 그 집에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갖는 모습도 나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흉내를 내보려고 애쓰면서 나의 공간도 조금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꿈꾸는 미니멀 라이프는 다음과 같다. 먼저, 내가 가진 물건이 무엇인지 내가 다 알 수 있는 만큼만 가지는 삶이다.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정리 책을 구입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다. 시간이 지난 뒤에 또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책을 사러 갔고 똑같이 그 책에 끌려서 같은 책을 또 구입했다. 우습게도 책장에는 정리를 위한 책이 2권이나 생겼다.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2권 다 비움을 실천하고 나서야 나는 그나마 정리를 위한 삶에 한걸음 가까워졌다. 이런 책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기에 최소한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언제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쟁여두지 않는 삶이다. 필요할 때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과 꼭 필요할 것만 같은 조급함이 물건을 사게 했다. 특히 육아를 시작하면서 국민 육아템, 필수 육아템, 꿀육아 아이템 등 이 물건이 있어야만 육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그런 물건을 다 쟁이고 살진 않았지만, 우리 집은 누가 와도 놀랄 만큼 아이 관련 장난감이나 물품이 많았다. 맥시멀 리스트는 육아도 맥시멀로 했었다. 육아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쟁여두는 행위뿐이었다. 지금도 조금 마음이 들썩거리지만, 그래도 미국에 온 뒤로 미니멀한 육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 번째, 내일 내가 사라져도 후회가 남지 않을 삶이다. 어느 책에서 당장 내가 죽었을 때 남은 사람들이 내 짐을 정리한다고 생각해보라고 했던 글귀가 생각난다.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은 흐릿해졌으나, 한동안 나는 내가 당장 죽었을 때 이 짐들을 이렇게 두고 가면 정말 싫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 내가 떠나더라도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고, 남길 만한 것만 남겨두고 싶어졌다.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자주 돌아보게 되었고, 정리하려고 애쓰게 됐다.
아직 ‘나’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내가 원하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정리의 기준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리고 욕심내지 않고 차츰 정리를 시작했고,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