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이 만들어가는 일상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시작’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일단 시작해서 하나씩 하다 보면 마무리를 짓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의미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눈보다 손이 빠르다.’라는 말을 엄마는 자주 하시곤 했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보여서 막막하게 느껴져도 막상 손으로 하나둘 하다 보면 생각보다 금방 끝낸다고 했다. 언제 다하냐며 투덜거리는 나를 격려할 때 주로 하던 말이라 지금도 뭔가 하기 싫은 일이 잔뜩 쌓였다고 느껴질 때면 엄마의 말을 떠올려 본다.
해도 티가 나지 않고, 안 하면 티가 확 나는 것이 집안일이라 했던가. 잘해도 본전인 느낌이 드는 집안일이 딱 그렇다. 매일 하고 있지만 늘 귀찮게 느껴지는 설거지, 식사 준비부터 주기적으로 해야 하지만 자꾸 미루게 되는 먼지 닦기, 창틀 청소 등. 집안일의 빈도와 범위는 끝이 없는 듯이 느껴진다. 그리고 왜 ‘나’만 하는 기분이 드는 건지. 하기 싫다고 생각하며 미루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쌓여버려서 더욱 하기가 싫어지기에 바로 해결해버리는 습관이 필요했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냥 해버리는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 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옷장을, 집을, 인생을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라고 적힌 표지의 문구부터 공감이 되었다. 해외 이사를 준비할 때에 이민 가방과 캐리어에만 짐을 챙겨서 이사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계기도 이 책이었다. 이 책의 작가는 ‘물건을 줄이면 해야 할 집안일도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이유였다. 육아며 살림이며 나의 일상이며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삶을 단순하면서도 깔끔하게 만들고 싶었다.
언제나 시작은 사소함에서부터 온다. 사소한 습관이지만 일상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일상은 단순하면서도 정리가 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식탁 위에 뭔가를 두지 않는 습관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식탁 위에 응용해보자. 아무것도 없이 정돈된 식탁 위에는 뭔가를 두기가 조심스럽다. 그런데 오며 가며 화장지, 리모컨, 마시던 컵, 다 마신 캔 등 누군가 뭔가 하나 올려두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뒤에 다른 뭔가를 더 올려두는 것이 어렵지 않고, 식탁 위는 순식간에 엉망이 된다. 정작 식사를 하려고 하면 다시 식탁을 정리해야 하고, 다른 용도로도 식탁을 이용하기가 불편해지고 눈으로 보기에도 어수선하다.
식탁 위를 ‘클린존(clean zone)’으로 정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무심코 제자리에 두지 않고 식탁에 올려두던 것도 사용 후에 바로 제자리에 두었다. 식탁 위에 올려두는 그 순간은 편하지만, 결국은 그 순간들이 쌓여서 더 큰 귀찮음과 불편함을 만드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사소한 행동이 쌓여서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사소한 습관이 쌓여서 정돈된 일상을 만들 수도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쌓이게 되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 미니멀 라이프를 도전하기 시작했고,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해결하기 위해서 ‘식탁 위 비우기’라든지 ‘클린존 늘려가기’ 등을 실천해보고 있다. 사소한 변화들이지만 하나씩 늘려가면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사소한 것들이기에 실천하고 유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일상의 사소함을 단순화하고 루틴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노력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 부담이 없을 것. ‘사소함’에서 출발한 나의 도전이 ‘위대함’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안함’에 이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