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의 시작도 티끌부터.
무엇을 비울까. 이것도 저것도 다 비우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이가 잘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 쓰다가 만 노트, 입은 지 오래된 옷, 잘 쓰지 않는 반찬통 등 조금만 집안을 살펴봐도 비워야 할 짐이 보인다. 미니멀 라이프 도전을 시작하고 비움을 계속 시도하고 있으나, 그 끝은 멀게만 느껴진다. 가끔은 여전히 다 비워내지 못하고 미련을 더덕더덕 붙이고 있는 나 스스로가 싫어지다가 그냥 포기해버릴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많이 비우고 왔고, 지금도 비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짐은 매일 늘어나는 기분이다.
짐이 늘어가는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던 첫 마음을 떠올려본다. 내가 꿈꾸는 목표는 간소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지, 그것을 한방에 이뤄내는 것이 아니다. 집안을 모조리 비워서 탈탈 털어내고 싶지만, 그렇게 정리하기에는 시간과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날이 많다. 그러나 아주 작은 부분,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비우고 정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간소한 삶을 유지하는 루틴이 된다.
아이가 오전에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면서 오전 루틴 중 집안 정리도 자리를 잡았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자마자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한다. 빨래를 돌려야 하는 날에는 일단 공용 세탁실부터 다녀온다. 세탁기를 돌리고 와서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통과 분리수거를 정리한다. 식기세척기와 식수대의 식기들을 정리하고, 아이 점심 식사 준비를 한다. 여기까지는 매일 하는 일들이다. 그러고 나면 매일 목표를 정해서 도장 깨기를 하듯이 정리한다. 어제는 주방 수납장, 오늘은 안방 트롤리 등 매일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도 재미있다.
예를 들면 하루는 주방, 주방 중에서도 수납장, 수납장 중에서도 첫 번째 서랍처럼 아주 구체적으로 목표를 정한다. 정리하다가 여력이 되면 그 목표를 더 넓힐 수도 있지만, 너무 무리하지 않는다. 서랍 속의 물건을 자주 쓰는 것, 비울 것, 옮길 것 등 카테고리별로 분류를 해본다. 자주 쓰는 물건은 쓰기 편한 동선에 맞게 배치를 하고, 비울 것은 미련 없이 떠나보낸다. 그리고 옮길 것은 비슷한 용도의 물건끼리 모을 수 있도록 다른 공간에 둔다. 그렇게 작은 공간을 매일 정리하면서 점차 동선이 편리한 공간 배치, 찾기 쉬운 물건 배치가 완성된다.
눈길이 닿는 곳, 손길이 닿는 곳을 직접 꾸려가는 재미도 느껴진다. 특히 물건 하나를 두더라도 어디에 둘 것인지, 이 물건을 왜 남겨뒀는지 등 내가 가진 물건을 향한 애정도 커진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책들도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비울 것을 찾기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지 고민하라는 말이 있다. 남긴 물건의 자리가 어느 정도 정착되고 나면, 비우고 정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점점 줄어든다. 언제 정리가 끝날는지, 한 번에 비워낼 수 있을는지 조급했지만, 티끌 모아 태산처럼 정리도 티끌처럼 작은 공간부터 하나씩 시작하면 어느새 태산 같던 집 정리가 되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스트레스가 된다면 그것은 주객이 바뀐 것이다. 그저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물들어가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처음부터 모든 짐을 비울 수도 없고, 일상을 한 방에 바꾸는 것은 어렵다. 그렇게 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몸과 마음에 부담이 되고, 미니멀 라이프 도전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동안 내가 실패해왔던 것도 지나치게 앞선 의욕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에 대한 욕심과 어서 달라지고 싶은 욕심부터 비우고 나니 이제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도전을 했던 시도 중 이번 도전이 가장 성공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잊지 말자.
거대한 만리장성도 첫걸음은 벽돌 하나였다는 사실,
미니멀 라이프의 첫걸음도 아주 작은 공간부터라는 사실을.
*전체 이미지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