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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May 28. 2022

미국 생활 D+240(8개월), 돌아보는 시작의 순간.

고생했던 짐 꾸리기부터 험난했던 비행의 기억.



  미국에 온 뒤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미국 살이에 적응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두면 나에게도 누군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오기 전 걱정했던 것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했고, 부족할까 봐 걱정했던 우리의 짐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꿈꾸기만 하던 미니멀 라이프도 반강제로 실천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도 최근에 글로 적어보고 있다.  미국에서 살아보는 것도, 그것으로 이렇게 미국 살이와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일이다. 도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일상이 되었고, 익숙해져 간다.


  미국에 오는 짐을 꾸릴 때, 우리의 짐은 3인 가구가 챙겨 올 수 있는 최대한의 가방 안에서만 꾸리기도 했다. 그래서 1인당 대형 캐리어(혹은 이민가방) 2개씩, 기내용 가방 1개씩, 휴대용 가방 1개씩 챙겼다. 아기 옷, 어른 옷, 주방 관련 용품, 아기 관련 용품 등 필요한 물품을 용도별로 나누고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 위주로 챙기기 시작했다. 짐을 꾸릴 때와 풀 때는 정신이 없어서 가방 내부를 찍어두지 못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리스트를 정리해봤다. 내가 갖고 온 물건이 이렇게 기억이 날 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다니 신기하다. 물론 빠진 것도 있겠지만. 선글라스, 선크림, 벌레퇴치제 이런 자잘한 짐들은 지금 글을 적다 보니 생각난다.


  출발 전 날까지도 짐을 다 꾸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나는 남편과 크게 다투고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빨리 결단을 내려야 했는데, 어느 하나 포기하지 못하고 다 챙기고픈 내 욕심에 며칠을 짐만 꾸리다가 출국한 것이다. 그때는 남편이 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하니 남편도 출국 전에 너무나 불안하고 걱정되었을 텐데 나는 나의 불안에 갇혀서 남편 마음을 몰라줬다. 다시 돌아간다면 얼른 짐부터 꾸리고 조금 더 떠나기 전 여유를 즐기고 싶다. 결국 무엇을 더 넣든 빼든 내 마음의 평화는 내가 찾아야 하는 것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공항 카트 2개에 가득 담긴 우리의 짐.

남편은 휴대용 유모차에 탄 아기와 카트 하나를 끌고

나는 나머지 카트를 끌며 공항에서 집까지 이동했다.


카시트는 무료로 비닐 포장해서 무사히 잘 도착했다.

폴레드 360 카시트,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이민가방도 고민하다가 각기 다른 브랜드로 샀는데

무리하게 짐을 넣으려다가 하나가 뜯어져서

어머니가 임시방편으로 바느질을 해주셨다. 더 튼튼하게.


신혼여행 때 구입했던 캐리어 세트 외에

미국 올 때 추가로 구입한 캐리어 세트도 가볍고 튼튼하고 좋았다.



  시카고 공항에서 매디슨으로 올 때

닛산 로그를 렌트해서 왔는데, 테트리스 하듯이 차곡차곡 짐을 실었다.

기내용 가방이랑 휴대용 유모차는 아기 옆자리에 실어야 했고

백미러 시야는 포기해야 했지만, 어쨌든 짐이 실어져서 다행이었다.


몇 개 되지 않는 후기들을 찾아보며 이 정도는 들어가겠거니 하고 왔지만

생각보다 많이 빠듯해서 남편이 고생을 많이 했다.

큰 차를 빌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비용도 아끼고 이동도 성공하고 좋았다.





  긴 비행시간도 이동 전 가장 큰 고민이었다. 18개월이던 우리 아기에게 이번 비행은 첫 비행이었다. 큰일을 앞두고 떨리는 것을 아기도 아는지 전날 밤부터 잠을 자지 않으려고 버티고, 겨우 잠들고도 새벽에도 깨서 울고 힘들어했다. 그래서 피곤한 상태이니 비행하는 동안 꿀잠을 자주지 않을까 아주 살-짝 기대를 했다. 그런데 그 기대는 헛된 희망이었다. 

 


아기가 평소에 좋아하던 책, 장난감과 새로운 장난감을 준비했다.

비행 대기 시간에도 장난감, 영상, 간식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이소 자석보드는 요즘도 즐겨 이용하는 장난감이다.



비행기에 탑승하니 어린이 선물로 컬러링북과 색연필이 제공되었다.

그리고 태블릿에 아기 영상을 저장해와서 보여주기 위해 

아기 이어폰을 요청했더니 따로 챙겨주셨다. 내릴 때 반납하면 끝.

문제는 처음 써보는 이어폰이 낯선 건지 비행기 자체가 싫은 건지

죄다 거부하느라 이어폰은 거의 써보지도 못하고 반납했다.


비행기 이착륙할 때 사탕을 먹이면 도움이 된다기에 준비했는데

이것도 처음 줘보는 거라 아기가 어색해하며 잘 못 먹어서 실패.


이어폰도 사탕도 미리 연습을 했어야 하나보다. 

유비무환이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해봤는데

역시 육아는 예상대로 되는 일이 아님을 한번 더 실감했다.




그나마 시간을 벌어줬던 아기 간식. 최대한 부피 작고 양 많은 퍼프 스낵으로 챙겼다.

그리고 한동안 정말 꽂혀있던 페파 피그 영상과 아기가 좋아하는 자기 영상도 준비했다.

그런데 비행을 시작하고 지겨워진 건지 비행기 소리가 싫어진 건지 불편함을 보이기 시작하자

간식도 영상도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소리 지르고 떼쓰고 울고 불고 안으라고만 할 뿐.



항공사에 준 컬러링북과 색연필도 갖고 놀고

각종 스티커와 스티커북도 갖고 놀았다.



  펜에 물을 넣고 끄적이면 그림이 보이는 두들북과

미루고 미루다가 여행 직전에 급히 만든 아기가 좋아하는 버클 놀이.






  진짜 열심히 준비했다. 아기에게도 첫 비행이고

나에게도 아기랑 하는 비행, 게다가 장거리 비행은 처음이었기에.

그런데 그런 준비는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겪어보고 알았다.

 

  첫 비행에 불편함을 토로하며 잠들지 못하는 아기를 안고서

왜 이러냐고, 그만 울라고, 이것 좀 보라고, 저것 좀 보라고

이리저리 발을 동동 거리며 달랬다.


근처 승객들의 불편해하는 얼굴이 보였고

안타까워하는 승무원들의 얼굴이 보였다.

졸리고 피곤하지만 잠들지 못하는 아기의 얼굴이 보였다.

그칠 줄 모르는 아기의 울음에 아기도 남편도 나도 다 지쳐갔다.


그나마 소리가 밖으로 덜 들리도록

좁디좁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아기를 안고서

아기도 울고 나도 울었다.


엄마 아빠가 낯선 곳으로 너를 데려가느라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제발 그만 울고 잠을 자면 안 되겠느냐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우리 가족 모두를 둘러싸고 있었고

장거리 비행을 하는 동안 힘겨움에 무너졌다.


미국 생활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이때 느꼈던 감정에 대해 쓰고 싶었다.

막상 쓰기 시작하니 그때의 감정이 살아나서

눈가와 마음에 뜨거운 것이 또 차오른다.


아기를 안고서 화장실에서 울던 그 순간이

아마 아기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모든 순간은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미화가 되기도 한단다.

8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보니

아직 미화가 되지 않는다.

다시 비행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그래도 미국에 가는 결정이 나고

두려움에 손발이 떨리고 눈물이 났던 대에 비하면

막상 이곳에서 지내는 일상은 편안하고 행복하다.


역시 겪어봐야 하나보다. 모든 일은.


8개월 미국 살이, 다시 돌아보니 그 시작은 힘들었지만

그 과정이 우리 가족을 더 성장하게 해 줬다.


아마 이런 큰 변환점이 없었다면, 

여전히 나는 저장강박증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을 테고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주기적으로 이렇게 적응해가는 과정을 돌아보고

이렇게 기록을 남겨두는 일도

시간이 지난 뒤에 값진 재산이 되리라 믿으며

오늘도 열심히 기록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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