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을 못 하니.
2021년 9월 말, 화면으로만 보던 미국에 왔다. 20개월째 살고 있지만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 순간이 많다. 운전하다가도 한국과 조금 익숙한 분위기의 동네만 지나가도 반갑고, 한식을 판매하는 곳을 가게 되면 그렇게 반갑고 행복하다. 매일 산책하는 칠면조가 시골집에 내려가면 닭을 보듯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내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게 꿈처럼 느껴지곤 한다. 어쨌거나 2021년 6월, 어느덧 2년 전이 된 그때. 미국행이 결정된 후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언어, 즉 영어였다.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얼추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영어교육을 받긴 했지만,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받은 경험은 거의 없다. 그래서 영어는 언제나 종이 속 활자로 존재했다. 입 속 언어로 내뱉을 일이 없거나, 있더라도 공식적인 일이 아니고서는 간단한 회화면 충분했다. 그래서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대한민국에서 잘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그 언어로 생활해야 하는 공간에 던져졌다. 너무나도 친숙하고 익숙하고 편안한 모국어가 종이 속 활자가 됐다.
당장 영어로 일해야 하는 남편은 나보다 더 고생했다. 남편은 종일 영어 듣기 시험을 치르는 기분으로 매일 적응하느라 힘들어했다. 그 모습이 짠하고 안쓰러우면서 하루하루 노력하는 게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애써준 덕분에 자동차 구매나 보험 계약 등 영어로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일도 하나하나 잘 해결했다. 그러나 20개월이 지났어도 남편은 여전히 영어가 마음만큼 늘지 않아서 답답함을 느끼고 힘들어한다. 매일 영어로 일하고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어도 자신의 한계를 깨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사실 나는 아이와 집에서 머무르거나 산책만 하는 등 딱히 영어를 쓸 일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 있어도 영어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많아서 미국이라는 게 딱히 와닿지 않았다. 남편과 종종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말 못 하는 아이 혹은 바보가 된 기분이 드는 게 정말 슬프다는 것이었다. 마트에 가서 계산원이 간단히 묻는 일상 대화에도 굳어버리는 나를 보며 바보가 된 기분을 느꼈다. 한때 나는 종이상자에 담을 것인지, 비닐봉지에 담을 것인지 묻는 아주 쉬운 질문에도 일시 정지가 됐다.
물론 언어의 문제도 있지만, 문화의 차이도 있기에 용어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게 많았다. 나는 비닐봉지를 plastic bag이라고 부르는 줄 몰랐다. 그리고 subway처럼 이것저것 차례대로 선택해서 주문해야 하는 치폴레(Chipotle)에서도 매 단계가 고난이었다. 한국에서 subway를 주문할 때도 어려웠는데, 그걸 영어로 하려니 점원도 나도 서로 답답했다. 딱히 이런 이유는 아니지만, 첫 방문의 고난 이후로 치폴레에 가는 일은 없었다.
영어가 걱정이었던 우리는 오기 전에 같이 영어 공부하자는 말도 수백 번을 하고, 아이를 재운 후에 함께 영어 회화책을 읽으며 연습한 적도 있다. 그러나 꾸준하지 못했다. 미국에 올 때도 한국어로 된 영어 공부할 책을 가져왔지만, 아직도 완독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다른 영어 공부 방법은 없나 기웃거리며 새로운 책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최근 영어 공부에 불씨를 지핀 3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아이 어린이집 학부모 상담이었다. 날짜가 정해진 순간부터 심장이 뛰었다. 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선생님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을까. 그저 헤헤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다가 Thank you만 연발하고 올 판이었다. 유튜브에서 미국 학부모 상담 표현을 알려주는 영상도 찾아보고, 웹사이트에 올려진 자료들도 찾아봤다. 다행히 아이 어린이집에서 아이 상담 시 활용할 아이 성장 기록을 미리 챙겨줘서 상담가기 전에 열심히 읽었다. 파파고 이미지 번역은 정말 감사한 기능이다. 잘 모르겠다 싶은 부분은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번역을 해주니, 마음이 급할 때는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이 따로 없다. 걱정하고 긴장했던 게 무색할 만큼 1시간 동안 선생님과 여러 대화를 나누고 상담을 잘 끝냈다. 무사히 지나갔지만, 평소 등원과 하원에도 느꼈던 답답함도 있어서 일상에서 주로 쓰는 표현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번째는 뮤지컬 라이언킹 관람이었다. 뉴욕에 갔을 때 아이가 어려서 뮤지컬을 못 본 게 정말 아쉬웠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도 공연한다고 해서 정말 가고 싶었다. 막상 가서 보려고 마음을 먹고 나니, 과연 가서 영어 대사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라이언킹 내용을 모르는 게 아니기도 하고, 영상으로도 여러 차례 봤고, 못 알아듣더라도 무대 연출만 보고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예매했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라이언킹 뮤지컬 스크립트 중 하나를 출력했다. 영상을 다시 보면서 스크립트도 읽었다. 그래서일까, 생각보다 공연 중 대사나 공연 전후의 안내가 귀에 들어왔다. 즉흥적인 농담은 바로 알아듣지 못해서 사람들이 웃을 때 같이 웃지 못한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미리 겁냈던 것보다는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 사람들이 웃을 때 나도 웃을 수 있는 정도는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영어 공부 의욕이 다시 불타올랐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아이의 영어 실력이 늘어가는 속도이다. 미국에서 어린이집을 다닌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영어를 하나도 몰랐던 아이가 영어로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원하는 요구 사항이나 자기 의사 표현도 간단히 영어로 말하게 됐다. 집에서 혼자 놀 때도 영어로 노래를 부르거나 말하는 게 늘어났다. 평일 오전에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어린이집에서 지내면서 영어 실력도 사회성도 나날이 늘고 있어서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다. 나에게도 영어로 말을 하거나 영어 표현을 물어보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러니 엄마표 영어든 엄마 영어든 어느 쪽이든 간에 나도 무언가를 하긴 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와 쓰기 좋은 영어 표현을 배우려고 새로운 영어 공부 책을 장만했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영어 공부를 멈춘 적은 없다. 연수든 앱이든 책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영어 공부를 해왔다. 언어 배우는 일은 재밌고 즐겁고, 그중에서도 영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좋아하는 것에 비해 열정을 다해 꾸준히 노력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영어 공부 모임도 하고, ESL 수업도 참여하고, 영어 공부 책도 읽는다. 이런 내 노력이 어딘가에는 쌓이고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다시 돌아본다. 미국에 20개월 살면 영어 실력은 어떨까. 시험을 치른 적은 없으니 객관적으로 나의 영어 실력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나는 분명히 늘고 있다고 느낀다. 원서를 읽는 일도, Small talk를 나누는 일도, 영어 공부 모임 과제를 하는 일도 점점 수월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앞으로 얼마나 더 미국에서 지내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남은 동안 영어를 다양하게 접하고 쓸 수 있는 환경을 본전 뽑을 기세로 노력할 것이다. 열정과 끈기가 더해지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