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을꾸다 Jul 04. 2022

영어를 못하는데 Daycare에 갑니다.

미국에서 어린이집 적응하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요즘 사회는 점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엄마와 아빠만 해내야 하는 일이 되어 간다. 혼자서 돌보든 둘이서 돌보든, 아기가 태어나고 행복도 늘어났지만 감당해야 할 피로와 부담도 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육아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긴 시간 멀리까지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기에 분명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남편은 직장 생활을 하고, 나는 육아 생활을 하고, 함께 해야 하는 육아와 집안일도 많다. 그러면서 서로 제대로 된 휴식을 갖지 못하고 점점 지쳐온 것이다.


  아기를 낳고 나서도 매번 힘들었고 마음이 요동쳤지만, 올해 봄의 나는 정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다.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불쑥 나고, 화가 나고 나면 가라앉히지를 못했다. 그 화는 아이와 남편, 나 자신에게 향했고 집은 늘 지뢰밭 같았다. 아기도 남편도 내 눈치를 살피고, 나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만 화가 났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화나게 하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화가 났고, 화를 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일 수면 시간이 부족했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하지 못하는 상황이 싫었고, 그래서 다시 잠을 줄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러니 컨디션이 좋을 리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서로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두 돌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알지만, 이대로는 서로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았다. 그래서 집 근처 어린이집(Daycare)에 신청했고, 대기 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차례가 돌아왔다. 한국에 있었어도 아마 아이와 처음 떨어지는 것이고,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기에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미국. 나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낯설고 어색한 감정을 느끼곤 하는 이곳에서 아이가 적응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가 가게 된 곳은 우리 같은 상황의 자녀들이 많아서 다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이었다. 터키, 인도, 이란 등 다양한 나라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와 함께 지내게 됐다. 등원 전 상담에서 아이가 영어를 하지 못해서 걱정이라고 하니, 다들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함께 배워가면 된다고 안심시켜주었다. 감사하게도 적응 기간에 아이가 힘들어할 때면 번역 기능을 켜서 한국말로 아이에게 엄마가 곧 온다고 말해주거나 놀이를 권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통해서인지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하는 아이지만, 선생님은 좋아했다.



  아이가 어린이집(daycare)을 가기 전부터 엄마와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 어린이집에서 하는 것, 간단한 의사 표현 등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아이는 27개월이 되는 동안 엄마와 떨어져 본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아빠와 있었거나 할머니와 있어서 낯선 이와 있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아기에게 엄마와 잠시 떨어지는 생활을 매일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기에는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렸다.

  어린이집 가기 전날, 아이 물병, 여벌 옷, 기저귀, 가족사진, 선크림 등 준비물을 하나둘 챙기는데 기분이 묘했다. 생각보다 소박한 준비물 목록을 보며, 뭔가 더 챙겨줘야만 할 듯한 초조함이 가득했다. 아이가 물은 잘 마실지, 기저귀는 잘 갈아줄는지, 긴 팔을 챙겨야 할지 반 팔을 챙겨야 할지 불안했다. 아이도 처음이지만, 나도 처음이기에 떨리고 긴장되었다.


  처음 5일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엄마와 떨어져 보았다. 엄마가 갈 때도 올 때도 아이는 울음 투성이었다. 아이의 우는 얼굴을 보고 나오는 것도, 데리러 갔을 때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도 힘들고 미안해서 나도 눈물이 나왔다. 복도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집으로 가기도 했다. 20분이 넘도록 소리를 내며 우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냥 다 포기하고 집으로 데려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 적응을 시작하면서 아이는 분리불안을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울거나 찾고, 잠시 화장실에 가는 일도 싫어했다. 밖에 놀러 나가서는 더욱 껌딱지가 되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렇게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이의 불안이 커지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앞으로 남은 미국 생활에서 계속 가정 보육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고 미안하지만,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어린이집(daycare) 선생님의 말씀을 동아줄처럼 붙잡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아이는 아침 외출 준비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어디 가냐고 연신 물으며 선생님 만나러 가지 않겠다고 외쳤다. 아이에게 어린이집(daycare)은 가기 싫은 곳으로 강렬하게 박혀버렸다. 여전히 울면서 등원을 했고, 울면서 다시 만났다. 그나마 집에 오는 길은 아이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서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서 가기도 하고, 장난감을 챙겨서 가기도 했다. 아이는 나를 만나면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웃어주었다.


  흔히 말하는 적응의 2주가 지나고 3주가 되었다. 주 초에는 울면서 등원하던 아기가 수요일부터 웃으면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데리러 갔을 때 울었거나, 울고 있거나, 울기 시작하거나 하는 경우는 여전했지만. “엄마 갔다 올게”라는 말이 무서웠다고, 엄마가 없어서 슬펐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지금은 엄마가 이렇게 옆에 있잖니라고 말하며 꽉 안아주었다. 엄마는 시계가 똑딱똑딱 지나고 나면 늘 만나러 온다고, 언제나 이렇게 옆에 있다고.



  3주 동안 아이도 나도 떨어져서 보내는 시간이 처음이라 어려웠다. 특히 아이는 말이 트인 지 오래된 편이라 어린이집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막막하고 답답할 것 같았다. 나는 매번 울고 낯설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게 정말 힘들었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감사하게도 이제는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오기도 한다. 


  나는 아이가 없는 동안 집안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곤 했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1시간이라도 오전에 그렇게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를 채워줬다. 그 시간을 잘 활용해서 집안일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에게 조금 더 많이 집중해서 놀아주고 싶었다. 아이가 힘겹게 적응해주는 만큼 나도 더 많은 애정을 담아서 표현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가 느끼는 스트레스가 집에 와서 조금은 날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좋아하는 활동도 많이 해줬다.


  주말과 휴일이 지나고 나면 다시 등원이 시작된다. 4주째에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예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도 나도 이 시간을 지나고 나면 함께 하는 시간이 더 행복할 것이기에 천천히 적응하는 시간을 기다릴 것이다. 엉엉 울다가도 내가 나가고 나면 5분도 되지 않아서 진정하고 노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이도 나도 첫 사회생활을 맞이하며 혼란스럽고 낯설었지만, 점차 익숙해질 거라고 믿어본다.




*전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