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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Jun 06. 2022

‘여행’, 준비부터 가볍게.

얼마나 짊어지고 떠날 것인가.

 

 ‘도라에몽 가방’은 한때 내 가방을 나타내는 단어였다. 도라에몽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중 하나인데, 주머니 속에서 무엇이든지 튀어나오는 만능인 친구이다. 뭔가 필요한 것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에 빌리는 것도 싫고, 없어서 당황하거나 불편함을 겪는 상황이 싫어서 내 가방에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챙긴 짐이 가득했다. 그래서 가방을 새로 사러 가는 일이 생겨도 작은 가방은 성에 차지 않았고, 수납공간이 많거나 부피가 큰 가방을 좋아했다.



  사람이 매일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늘 새로울 것 없는 걱정이고, 그 걱정은 대체로 의미 없는 걱정이라고 한다. ‘혹시’ 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그 마음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세상 모든 것이 다 필요하고 중요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없는 물건은 구매해서 챙겨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조급해지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물건을 챙겨도 어떤 날은 가방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기도 하고, 심할 때는 가방에 있었다는 것도 잊을 만큼 쓰지 않기도 한다. 가방은 블랙홀처럼 들어간 물건은 있지만, 나오는 물건은 없기도 했다.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1박, 2박 등 ‘숙박’이 들어가는 일정이 생기면 걱정은 몇 곱절이 되었다. 특히 익숙한 지역이 아니라 낯선 곳이나 예측이 어려운 곳에 갈 때면 가방의 크기, 수는 점점 커졌다. 대학생 시절, 한 달의 유럽 여행을 앞두고 짐을 챙기면서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했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장거리로 장기간 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이어서 어느 하나 빠트리기가 어려웠다. 무게와 크기가 정해진 짐 싸기에서 넣을 것, 뺄 것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여러 사람의 짐 목록을 찾아보며 나만의 목록을 정리했다. 나만의 기준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기준을 참고해야만 했고, 우습게도 이 사람 저 사람이 챙긴 물건을 죄다 종합해서 챙기느라 가방은 아주 무거워졌다.



  바리바리 챙긴 가방을 이고 지고 여행을 떠나 본 사람을 알 것이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후회가 된다는 것을. 실제로 여행을 하는 중에 자신이 챙겨 온 짐을 비운 사람의 이야기도 흔히 들을 수 있다. 나도 그랬다. 무거운 가방에 피로가 쌓이고 그러다 보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되곤 했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 챙긴 짐이 괴로운 여행으로 만들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고 난 뒤에야 내 마음과 가방은 조금씩 비워지기 시작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라는 말이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이 말이 찰떡이라고 느꼈다. 내 가방 속에 어떤 물건이 없어도 다른 물건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정 급하면 구매하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구매까지 가는 일도 거의 없을 만큼 내가 가진 물건의 최소한만 챙겨도 ‘여행’에는 지장이 없었다. ‘1인 다 역’을 하는 배우처럼 여러 역할을 해내는 물건이 참 많다. 물건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깬다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휴지와 물티슈, 손수건, 턱받이 등 아기 식사를 위해 필요한 물건만 해도 여러 가지를 챙겨 나섰다. 그런데 지금은 손수건 하나면 충분하다. 손수건으로 턱받이를 해주기도 하고, 휴지처럼 쓰기도 하고 물을 적셔서 물티슈처럼 쓰기도 한다. 물티슈를 쟁여두고 썼던 예전과 달리, 미국에 와서는 딱 1번 사서 써본 뒤에는 구매한 적이 없을 정도이다.



  가고 싶은 길을 즐기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려면, 내가 짊어지고 있는 가방도 가벼워야 한다. 발걸음도 마음도 산뜻한 상태로 여행하는 것은 준비 과정에서 얼마나 내려놓고 비우냐에 따라 결정된다. 생각보다 우리의 여정에서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 매일 새롭게 떠나는 ‘인생’이라는 여행도 그렇다. 체중 감량도 하고 싶고, 경제 공부도 하고 싶고, 영어도 잘하고 싶고, 챙기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발걸음도 마음도 무거워지고 속도도 더디다. ‘인생’ 여정의 가방에 어떤 짐을 꾸려볼 것인가. 모두 짊어지고 떠난다면, 아무것도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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