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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Jun 11. 2022

‘혼자’가 행복해야 ‘함께’도 행복하다.

관계는 해우소가 아니다.

  

  소속감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할까. 우리는 ‘어느 학교 학생인가요?’, ‘어디에서 근무하나요?’, ‘누구와 친한가요?’처럼 ‘소속’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소속’이 없던 때에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해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기억도 난다. 그 시기에 나는 너무나도 어딘가에 속하고 싶었다. 나는 혼자서 여행하는 것도 좋아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도 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과 별개로 ‘소속’이 없다는 것은 초조하고 불안하게 했다.



  불안한 무소속의 시간이 지나가고 임용 시험에 합격했다. ‘교육청’ 혹은 ‘학교’에 소속되었고, 나는 나의 ‘소속’이 생긴 것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이 시작되고 난 뒤, 나의 소속감은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직장’이 아닌 ‘가정’으로 나의 주된 소속이 달라졌을 뿐인데,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기의 엄마, 남편의 아내, 가정의 주된 관리자로 달라진 내 역할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아기가 100일이 될 무렵, 우울감은 점점 커졌다. 흔히 말하는 산후 우울증 혹은 육아 우울증인지 달라진 소속에 대한 불안과 부적응으로 인한 우울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확실한 것은 한번 우울해지기 시작한 마음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을 하면서 내가 살던 곳이 아니라 남편의 직장이 있는 곳으로 왔고, 내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의 일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전화나 SNS로 지인들과 교류할 수 있었지만, 그것 역시 쉽지가 않았다.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하고 소중했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남편의 퇴근 시간만을 기다렸고, 회식이 있거나 출장이 있어서 늦거나 오지 않는 날은 외로움과 슬픔이 증폭되었다. 그래서 변화가 될 만한 계기를 찾게 되었다. 즐겨 들리는 카페에서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모임’이 활성화되는 것을 보고, 나도 소모임을 시작했다. ‘백독프’라고 해서 100일 동안 33권의 책을 읽는 독서 프로젝트 모임이었다. 아기 낮잠 시간이나 밤잠 시간에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서 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모임을 시작하면서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육아서도 읽고 집에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도 읽고 전자책도 읽었다. 틈날 때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불안감과 우울감은 줄어들고 성취감과 의욕이 늘어났다.



  그렇게 소모임에 빠져들었다. 영어공부와 운동 루틴을 만들기 위해 루틴 완료 후 인증하는 소모임, 맘스다이어리에 육아일기를 쓰는 소모임, 아기의 발달과 놀이를 매주 공유하는 소모임, 매일 한 가지 이상 비우거나 정리하고 인증하는 소모임, 경제 공부를 함께 하는 소모임, 집밥을 만들어 먹고 공유하는 소모임, 매일 글쓰기를 하는 소모임, 나의 일기를 쓰는 소모임, 좋은 영상을 보고 요약해서 공유하는 소모임,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소모임, 가계부 소모임, 육아서 읽기 소모임, 하루 2쪽 이상 읽기 소모임, 블로그 포스팅 소모임까지. 아기의 100일 무렵 시작한 소모임이 840일이 되니 총 14개나 가입하고 활동하고 있다.


  소모임을 나열해보니,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 많아졌다. 성격이 비슷한 소모임도 많아졌다. 매일 혹은 매주, 매달 인증하는 소모임을 하면서 ‘인증’이 부담 또는 압박되고, 주객이 전도되어 소모임을 하게 된 이유보다 ‘인증’을 하기 위해 ‘사진’ 찍기 급급한 하루가 되기도 했다.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종종 밀려왔지만,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매일 무의미하게 보낼 것 같았다.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소모임 구성원과 맺어진 ‘관계’와 그 속에서 쌓여가는 ‘소속감’을 놓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외롭고 힘들 때 소모임 구성원과의 소통은 나를 버티게 해 줬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함께’이고 싶었다.



  그러나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것도 소모임이었다. 하루를 가득 채워버린 소모임에 묻혀버린 일상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쉬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14개의 소모임을 다 붙잡고 가는 것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내 욕심이기에 하나씩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근심과 우울함을 풀기 위한 ‘해우소’처럼 시작한 ‘소모임’이지만, 여기에 매달리게 되면서 그 소모임들이 나를 다시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소속’을 찾고 싶었지만, 온라인 속 소모임에서 찾는 나의 소속은 온라인 채팅방을 나오는 순간 사라지는 모래성이었다. 결국은 내가 닿고 있는 공간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그 생활에서 오롯이 나만의 ‘해우소’를 찾아야 했다.



  소모임 활동을 하면서 중간에 나가는 구성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저렇게 나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소모임을 줄이는 것이 어려웠다. 책임감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싫고,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지치고 나니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소모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상이 내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기에 육아를 하며 이 활동들을 이어가는 것도 버거워졌다. 그래서 어금니 꽉 깨물고 하나둘 정리를 시작했다. 아쉬움과 죄송함의 인사를 남기고 소모임 공간을 나왔다. 막상 나오고 나니, 처음부터 나에게 없던 공간처럼 너무나 쉽게 사라졌다.



  지금까지 ‘혼자’라는 기분이 싫어서, ‘외로움’과 ‘우울감’이 싫어서, ‘소속감’을 찾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온라인으로나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녔다. 현실적으로 오프라인으로 누군가를 만나기가 힘든 상황이었기에. 그러나 근본적으로 나의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그 관계도 건강하게 이어나갈 수가 없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관계’는 나의 해우소가 아니다. 내 근심과 걱정을 털어놓기 위해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소속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함께’ 행복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다.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알아야 ‘함께’여도 행복할 수 있다. 소모임을 정리하며 나는 ‘혼자’서도 내 일상을 정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글 속 전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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