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을꾸다 Jun 15. 2022

‘엄마의 일기’를 보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그 마음, 닮아갈 수 있을까.

우연히 서랍 속에 숨겨둔
당신의 일기를 봤어요.
나이가 먹을수록 사는게
자꾸 힘에 겨워지신다고.

알아요
내 앞에선 뭐든지 할 수 있는 강한 분인걸.
느껴요
 하지만 당신도 마음 약한 여자라는걸.

이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당신.
당신 모습 닮아갈래요.


  왁스의 ‘엄마의 일기’라는 노래가 있었다. 나는 이 노래만 부르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부터 엄마는 참 고생이 많았다. 가정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고,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투박한 경상도 남자인 아빠의 모습은 내가 봐도 마음을 외롭게 했다. 물론 내가 보는 부모님의 모습과 부부로서 부모님이 공유하는 감정은 아마 다를 것이기에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엄마의 모습은 늘 외롭거나 힘들어 보였다. 그 외로움과 힘듦에 나와 남동생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노래 가사처럼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 하루하루 가계부와 일기를 쓰고 계셨다. 나와 남동생이 속상하게 하거나 기쁘게 한 일, 혹은 아빠와 있었던 일 등 엄마의 일상이 담겨 있었다. 그 속에 묻어나는 외로움과 고단함이 어린 나에게도 전해져서 엄마의 일기를 읽다 보면 죄송함과 속상함이 밀려와 눈물이 났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안일을 눈치껏 하거나 엄마에게 애정표현을 더 많이 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실천을 잘했던 편이 아니라 지금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 뒤로도 종종 엄마의 일기를 꺼내 보며 힘든 이야기가 적히지 않기를 바라곤 했다.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어느 날 아빠도 엄마의 일기를 보신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속에 적힌 이야기 중 자신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을 보고 화를 내셨다. 이런 내용을 왜 적느냐며. 내가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쓰듯이 엄마도 일기를 쓰시는 게 감정을 토해내고 풀어내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공간에 담아낸 내용을 보고 아빠와 갈등이 생기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힘드셨을까. 그 뒤로도 엄마는 일기를 쓰셨겠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아마 더 비밀스럽게 숨기셨으리라. 아빠는 왜 그 속에 담긴 마음은 봐주지 못하셨는지 많이 원망스러웠다.



  결혼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엄마를 많이 떠올리게 된다. 나는 지금도 엄마에게 살가운 딸은 아니다. 짜증스럽게 대꾸하는 날도 많고, 엄마의 생각과 일상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답답함을 느낄 때도 많다. 걱정하는 마음이 화로 표현되기도 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뾰족한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27개월에서 28개월로 넘어가고 있는 우리 아기가 나에게 삐딱한 표정이나 말을 던지거나 얼굴을 때리고 발로 차는 행동을 한다. 아마 나도 우리 엄마한테 그랬을 것이다. 서른이 넘어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러고 있으니 답이 없다. 이런 시간을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버티며 나를 키우셨을까.


  해외 생활의 고단함과 일상의 피로가 쌓이면서 나날이 갈등과 서운함이 쌓여가는 남편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좋은 점도 많고 사랑이 가득한 날도 많지만, 함께 있어도 외로운 날도 많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도 모르고 넘어가기도 하고, 알고도 사과를 하지 않는 날도 있다. 쉬고 싶을 때 편히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점점 예민해지기도 한다. 내가 남편이 해외에서 영어로 일하며 출근해서 보내는 하루를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듯이 남편도 27개월째 가정보육을 하며 육아하는 나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의 하루를 다 알 수 없기에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평행선처럼 접점을 만들 수가 없다. 그런 감정을 다 말로 풀어낼 수는 없기에 나도 ‘일기’를 쓰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육아도 지치고 살림도 지치고 남편과의 관계도 어려울 때, 그럴 때 엄마는 어떻게 버티셨을까. 나는 왜 엄마의 일기를 보고도 엄마를 더 안아주지 못했을까. 육아가 힘들어서 전화를 걸었던 날, 엄마는 우리 아기에게 장난스레 구박하며 ‘우리 딸 너무 힘들게 하지 말그라!’라고 했다. 나는 아직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기인데, 엄마가 되었다. 언제쯤이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나도 엄마의 그 마음을 닮아갈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아기에게 토해내고 말았다. 



  오늘도 아기를 힘들게 재웠다. 잠든 아기의 콩닥거리는 심장이 내 손끝에 느껴졌다. 가만히 그 박자에 집중해본다. 이 심장 소리를 처음 들었던 날의 기쁨과 반가움을 일상 속에서 너무나 쉽게 잊는다. 오늘도 이렇게 후회와 반성의 일기를 쓰는 부족한 엄마이지만, 이 일기를 우리 아기가 읽을 즈음에는 ‘다 그렇게 키우는 거지 뭐-.’라며 웃을 수 있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 엄마는 요즘도 일기를 쓰고 계실까. 그 일기 속의 나는 이제 어떤 모습일까. 엄마의 일기도, 나의 일기도 조금은 행복한 이야기가 더 많이 적히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바라기 싹이 돋아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