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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Jul 16. 2022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

나는 어떤 일을 좋아하는가.



  동네 어른을 모셔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한 적이 있다. 나는 전체적인 준비 및 행사 진행을 하고, 동네에서 함께 놀던 동생들이 태권도, 악기 연주, 시 낭송 등 각자 장기를 준비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흐릿해졌으나, 그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중학년이었다. 엄마 말씀으로는 평소에도 동네 아이들을 앉혀놓고 종이접기를 알려주거나 뭔가 가르쳐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장기자랑 모습을 찍어둔 사진을 본 남편은 꼬맹이부터 이런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미술학원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에 써주신 편지,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방학 때 보내주신 편지나 선생님들께서 전해주신 사랑과 관심이 참 좋았다. 처음으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계기도 손편지였다. 나도 그런 사랑과 관심이 담긴 손편지를 쓰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학창 시절을 거치며 만난 여러 선생님을 보면서 닮고 싶은 점과 아닌 점을 쌓아왔다. 되고 싶은 선생님의 모습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원서 접수를 하던 때에 내가 정말 좋아하던 교과 선생님께서 조언을 해주셨다. 내가 지원하려는 교과 말고 국어, 영어, 수학처럼 주요 교과를 선택하라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그 일은 마냥 좋아하는 일이 될 수 없다고 하셨다. 본인도 좋아해서 선택한 교과이지만, 주요 교과가 아니라는 이유로 속상하고 불편한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좋아하던 선생님이었기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과 그날의 표정은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물론 선생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소신대로 지원했다.





  임용 합격 후 처음 발령받아서 간 학교는 시골의 아주 작은 학교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수업을 병행해야 했고, 5과목의 수업 및 업무를 맡았었다. 학년 당 학급 수가 하나라서 거의 매일 아이들을 만나고, 어떤 학년은 하루에 과목을 바꿔가며 2번, 3번을 만나기도 했다. 그래도 그 학교에서의 시간은 참 재밌고 즐거웠다. 벚꽃이 피는 학교 정자에서 아이들과 사진 찍던 순간, 눈이 쏟아지던 겨울에 함께 눈싸움했던 순간, 매주 행복 수업하며 행복을 배워가던 날들까지 빛나는 날들이었다. 선생님이 되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어릴 적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거나 아는 것을 알려주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덕분에 망설임 없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물론 제과제빵사가 되고 싶던 시기도 아주 잠깐 있었지만. 나의 작은 관심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기쁨이 좋았다. 선생님께서 염려하셨던, 좋아하는 교과를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지금까지는 후회되지 않는다. 가끔 교과 자체가 적성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하긴 하지만.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웃께서 한국어 그림책을 읽어주는 스토리 타임 모임을 만드셨다. 격주로 모이다가 최근에는 매주 모이고 있는데, 이웃께서 늘 그림책과 독후활동을 준비해주셨다. 가끔은 내가 준비를 하기도 했다. 휴직 후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거나 활동을 준비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 모임을 위해 책을 고르고 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하니,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딱히 관심도 보이지 않는 어린 아가들을 앉혀두고 하는 활동이지만, 아가들이 잘 듣고 놀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나를 보고 옹기종기 앉아있는 아가들이 웃어주니 행복과 보람이 채워졌다. 이웃께서 찍어주신 사진 속 나는 미소가 가득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랐다. 휴직 전 교재 연구를 하고 활동을 준비하며 즐거워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출산 휴가와 휴직이 이어지면서 아직도 한참 남은 복직이 두려웠다. 수업할 자신도, 아이들 지도할 자신도 없어졌다. 아주 소소하게 아가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준비하고 진행했을 뿐인데, 설렘과 자신감이 살아났다. 수업도 하고 싶고, 아이들도 만나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과 그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 두 가지 모두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이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희망 진로를 채워야 하는 시기가 찾아오면 아이도 나도 같이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리곤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면 나의 일상과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은 순간이라도 내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기록해두는 것이다. 그 기록이 쌓이면 나의 좋아하는 일 목록이 되고, 그것이 직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나의 좋아하는 일 목록은 오늘도 더해지고 빠지며 기록되고 있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 내가 아는 것을 알려주는 일, 더 알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일, 이야기를 나누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떠올리며 적기만 해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직업으로 하는 좋아하는 일은 늘 행복하고 즐거울 수는 없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이기에 힘들고 지치고 한계를 만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이라서 하기 싫은 순간에도 버틸 수가 있다. 복직을 앞두고 마음이 불안해지는 순간은 다시 올 것이다. 그 순간, 좋아하는 일의 기운을 담아둔 이 글을 꺼내야겠다.

   

*전체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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