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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Jul 21. 2022

아이의 눈과 입은 투명하다.

육아의 새로운 맛 개시

 


  신생아 육아를 할 때 가장 답답했던 점 중 하나는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왜 우는지, 배가 고픈지, 배가 부른 지, 배가 아픈지, 더운지 추운지 묻고 싶은 건 많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로 구분해야 한다는 게 어려웠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따라 무엇을 요구하는지 구별하는 강의나 자료도 찾아보았지만, 현실 육아에서는 좀처럼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말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면서 옹알이도 하고 내 행동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라도 아는 마냥 웃어주는 날에는 육아의 고단함도 날아갔다. 반응이 없는 인형을 앞에 두고 혼자 떠드는 것처럼 느껴지던 날에 비하면 아이의 작은 웃음과 반응은 큰 선물이었다. 옹알이가 늘어갈수록 언제쯤이면 엄마 아빠를 불러주는 날이 올까 손꼽아 기다려졌다. 의사 표현도 조금씩 뚜렷해졌고, 육아는 여전히 어려워도 행복한 순간도 늘어났다.


  곧 29개월이 되는 지금은 아이가 말을 하는 일상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아이는 15개월에서 16개월 넘어갈 즈음부터 말이나 노래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18개월을 넘어가면서 할 줄 아는 말이 늘기 시작하더니 20개월 넘어가면서부터 문장으로 다양한 표현을 하고 있다. 노래나 그림책을 기억했다가 그대로 따라 할 때면 기억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아이의 말이 일상이 되면서 처음에는 매일 놀랍고 신기했던 표현도 일상이 되었다.



  아이의 눈과 입이 투명하다고 느끼는 건 아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순간이다. 남편에게 농담으로 하는 표현, 기분이 나쁠 때 혼자 중얼거리던 표현, 아이한테 화낼 때 했던 표현 등 무심코 습관적으로 내뱉었던 표현이 아이의 입으로 살아날 때마다 부끄러워서 어디 숨고 싶어 진다. 아이는 그 모든 순간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다가 툭툭 뱉어내었다. 거기다가 그것의 의미를 알든 모르든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대략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부끄럽고 미안하고 속상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은 아이가 내 행동을 따라 할 때도 느꼈지만 말을 시작하고 나니 매일 와닿는다. 내가 저런 말과 행동을 했었다는 사실을 아이를 통해 깨달을 때마다 부모의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기도 한다. 아이를 위한다고 했던 말이나 설명해줬던 말도 아이는 나에게 그대로 전해주기도 한다. 무심코 건네는 아이의 말에 힘이 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는 것은 대부분 엄마 아빠의 힐링 포인트일 것이다.



  SNS의 어느 만화에서 아이가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1분 만이라도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다는 장면이 있었다. 남편과 나도 그랬다. 아이가 제발 엄마 아빠를 불러주기를 애타게 기다렸는데, 지금은 그만 찾아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다. 이런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질까 봐 아이에게 티는 내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몸을 움직여 아이의 요구에 반응해줘야 할 때면 정말 간절하게 조용히 혼자 있고 싶다. 아이는 그런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나에게 쏟아내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육아를 먼저 시작한 선배들이 그런 말을 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몸이 힘들고 커갈수록 정신(마음) 이 힘들다고. 아이가 새로운 성장 변환점을 지날 때마다 나도 같이 성장한다는 느낌이 든다. 언어 능력과 기억력이 발달하는 시기를 지나면서 나는 육아의 새로운 맛을 보고 있다. 매운맛이라고만 생각했던 육아에 설탕 몇 숟갈 더하는 느낌이랄까. 혹은 아주 달콤한 마카롱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사르르 녹는 솜사탕 같은 말에 나도 녹아내리기도 한다.


  아이를 만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고, 달콤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런 나를 투명하게 비춰주며 돌아보게 하는 아이가 있어서 오늘도 나는 노력한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산책하고, 놀이도 하며 다정한 말을 건네본다. 아이는 늘 그랬듯 내가 전해주는 다정함과 사랑보다 더 큰 달콤함을 전해준다. 비록 육아는 언제나 어렵고 막막하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내가 함께 자라는 시간이라 생각해본다. 이 육아의 끝에 아이도 나도 서로에게 다정함과 달콤함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 기억해두고픈 아이의 투명한 순간들 -     


1. 유아차(유모차) 산책 중

아이: 엄마 윰깅(유모차 조깅) 해주세요!

엄마: 무릎이 아파서 할 수가 없단다. T-T

아이: (엄마 무릎을 향해 호-해주며) 이제 안 아프죠? 윰깅 해주세요!!   

  

2. 주방놀이를 하던 중

아이: 엄마 이거 먹어보세요

엄마: 우와-이거 뭐예요? 무슨 맛이에요?

아이: 먹어봐- 튼튼하게 해주는 거야. 훨씬 맛있단다?!     


3. 몸이 아파서 누워있는 중

아이: 엄마 아파요? 약 먹어요!

엄마: 약 먹었단다.

아이: 엄마 호-해주고 토닥토닥해줄게요. 자, 다 나았죠? 일어나요.

엄마: 응 그래 일어날게. T_T     


4. 같이 누워서 노는 중

엄마: 엄마는 아가를-

아이: 사랑해-사랑해-

엄마: 아가도 엄마를-

아이: 사랑해요- 사댱해!     


5. 역할 놀이하던 중

아이: 엄마 응애응애 하세요.

엄마: 응애응애-

아이: (쪽쪽이처럼 생긴 장난감을 꽂아주려고 하며) 엄마 내가 쪽쪽이 해줄게요.     


6. 아이에게 뭔가 부탁했을 때

엄마: 아가야 엄마한테 갖다 줄래?

아이: 나는 지금 장난감을 들고 있어서 엄마한테 갖다 줄 수가 없어.     

엄마: 아가야 엄마랑 밖에 나갈까?

아이: 나는 지금 힘들어서 나갈 수가 없어. 쉬어야겠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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