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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Oct 05. 2022

엄마처럼 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사는 것이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것


엄마, 나는 애 못 키우겠어.


  엄마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건만, 영상통화 속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속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다. 엄마는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역만리에 있는 딸을 걱정하며 지낼 텐데, 못난 딸은 그 위에 마음의 짐을 더해버린다. 엄마는 아이 키우는 게 다 그렇지 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엄마는 어떻게 둘이나 낳아서 키웠냐며 나는 아이 하나 키우는 일도 너무 버겁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시어머니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애가 그렇게도 안 하면 애냐고. 우리네 엄마들은 다 그렇게 우리를 키우셨나 보다.



엄마, 여기 공용 세탁실 정말 싫어.

 

  미국에 오기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공용 세탁실은 지금도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 1년을 살면서 적응도 했고,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가끔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다른 사람이 세탁할 때 시간이 겹치면 사용할 수 없고, 세탁기의 청결 상태도 별로고, 비가 오는 날은 세탁실 가는 길도 힘겹다. 싫다고 투덜대는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옛날에는 세탁기도 없어서 우물가에서 빨래도 했다며. 엄마에게 “라테는 말이야”를 하는 거냐고 쏘아댔지만 엄마의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그랬다. 내가 잔뜩 화가 나서 투덜거리면, 허탈하리만큼 별일이 아니라고 쉽게 말했다. 그게 참 싫을 때도 있었는데, 이젠 엄마의 그런 면을 배우고 싶어졌다. 엄마는 하소연을 늘어놓는 딸에게 힘들다고 생각하고 나쁜 것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이 내려간다며 그런 생각을 멈춰보라고 말했다. 다들 엄마처럼 사는 줄 아냐며 퉁명스러운 대꾸가 먼저 튀어나왔지만, 엄마의 한결같음에 마음이 편해졌다. 어쩜 이런 엄마를 보고 자랐는데 나의 성격은 모나고도 모났을까.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


  엄마는 저렇게 말하곤 했다. 자식을 키워보면 엄마 마음을 알 것이라고. 엄마가 되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은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사는 것이었다. 엄마처럼 그저 허허실실 하며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처럼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생각한다. 엄마는 이 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도 엄마에게 이렇게 했을까. 왜 엄마가 너 같은 딸을 낳아서 키워보라고 했는지 이해됐다.


육아와 맞지 않는 성격

가끔 검색창에 이런 검색어를 입력해본다.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 육아가 힘들다고 느껴지는 사람, 육아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 비슷한 키워드를 입력한 사람들과 그런 글이 가득하다. 그런 검색 결과를 보면서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게 아니구나, 나만 버거워하는 게 아니구나 하며 안심하는 내가 우스울 때도 있다. 다들 집안일도 육아도 척척 해내고 힘들어하지 않고, 아이에게 언제나 따스하고 사랑이 가득한 엄마인 듯한 SNS 속 엄마들을 보며 우울해진 마음을 털어내려 애를 쓴다. 조금 힘들고 지쳐도 아이가 주는 행복과 사랑으로 힘내며 살아가는 엄마들이 대부분이겠거니.



엄마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것

  엄마는 다 그런 줄 알았다, 원래 그런 줄 알았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글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가득 묻어났던 느낌은 생생하다.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도 친구가 필요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휴식이 필요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들인데, 나는 왜 그 당연함을 외면하며 살아왔을까. 엄마가 되고서야 엄마가 보여주지 않던 엄마의 마음이 보이다니. 나는 정말 엄마처럼 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못 살 것 같다. 엄마가 나와 동생에게 전해준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나는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여전히 엄마로서의 나보다 그저 나로서의 나가 더 소중한 내가 과연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엄마 같은 엄마의 마음은 닮아가고 싶다. 오늘도 아이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던 부족한 엄마는 좋은 딸, 좋은 엄마, 좋은 사람이 되려고 흉내라도 내어본다. 그렇게 흉내라도 내다보면 정말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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