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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꾸다 Oct 11. 2022

관리받는 기분을 내고 싶다면.

붙이든 바르든 뭐든 해보자.

 


 오이를 떠올리면 어릴 적 얼굴 가득 오이를 올리고 누워있던 추억이 떠오른다. 엄마는 가끔 오이를 칼로 얇게 썰거나 채칼로 한 겹씩 잘라내서 팩을 해줬다. 올리고 남은 오이를 아삭아삭 주워 먹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 추억 덕분일까, 나는 팩 하기를 좋아한다. 팩을 하면 엄마와의 추억도 떠오르고 나를 위해 관리받는 기분도 났다.


  요즘도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1일 1팩이 유행한 적이 있다. 팩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빠져들었다. 당시 팩은 가격이나 브랜드 전혀 상관없이 바른 사용 방법대로 꾸준히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10+1로 판매하는 팩도 참 많았고 1일 1팩용 팩으로 홍보하며 판매하는 제품도 많았다. 팩 욕심에 이것저것 사서 쟁여뒀다. 매일 쓰면 금방 줄어들 거니 괜찮다며 열심히 샀다. 피부가 좋아지는지는 딱히 모르겠지만, 팩을 붙이고 있다가 떼는 그 순간에 드는 개운함이 좋았다. 별 것 아니지만 열심히 산다는 기분도 들곤 했다. 



  내 얼굴색은 까맣기도 하고 낯빛도 어두운 편이다. 엄마는 가끔 놀러 온 친구의 맑은 피부를 볼 때마다 내 얼굴에는 언제쯤 빛이 날는지 걱정했다. 자연스럽게 미백, 화이트닝, 톤업 등 얼굴을 밝혀줄 키워드에 손길이 갔다. 화장품도 팩도 그런 제품만 사들였다. 미백에 좋다는 팩은 상자째로 사기도 했다. 더 까매지기 싫어서 선크림도 이것저것 다 써봤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 전 매장에서 주기적으로 피부 관리를 받아도 변화가 보이지 않는 내 피부의 뚝심에 백기를 들었다. 애써도 좋아진다는 느낌이 없으니 팩도 시들해졌다. 미니멀 라이프 도전하면서 가장 먼저 비워진 제품 중 하나가 이런 팩이었다. 대부분이 유통기한이 지나버려서 쓸 수 없게 된 상태였다.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팩과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팩 하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팩을 사지도 않고 하지도 않으며 살아왔다. 가장 큰 변명은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트 팩을 붙인다면 15분에서 20분이면 충분한 시간이고, 슬리핑 팩을 사용한다면 바르고 자면 돼서 별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돌아보면 그저 마음이 없었을 뿐이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만큼의 에너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잠시 팩을 뜯거나 바르는 시간과 에너지조차도 나에게 쓰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제야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까. 요즘 부쩍 팩이 하고 싶어졌다. 관리받는 기분을 내고 싶어졌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팩 가격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비쌌다.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뺐다가를 몇 번을 반복했었다. 어느 날, 이 정도면 나를 위해 충분히 쓸 수 있는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챙겨 왔으나 구석에 넣어두고 막상 쓰지 않던 슬리핑 팩도 생각났다. 그렇게 새로 산 팩과 슬리핑 팩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팩을 꺼내 두니, 짬이 나면 팩을 찾는다. 명상하기 전에 시트 팩을 붙이기도 하고, 자기 전에 슬리핑 팩을 바르기도 한다. 정말 사소한 행동이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행동이기에 피부도 마음도 촉촉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자신의 건강, 체력, 이미지 따위를 가꾸고 살피는 일을 자기 관리라고 한다. 그리고 매장에서 받는 각종 서비스도 관리받는다고 한다. 자기 관리 중 하나로 피부 관리도 포함되기도 한다. 나를 위해 관리받는 기분을 내고 싶다면, 꼭 매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 단지 필요한 건 나를 챙기고자 하는 마음과 에너지다. 육아며 살림이며 일이며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챙겨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고작 팩 하나를 하는 행동도 피부를 관리하기 위해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런 행동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은 간단하지만 어렵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드는 것도 에너지가 크게 드는 일도 아니지만, 마음을 먹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아주 조금만이라도 의식하고 마음을 쓰면 실천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내 얼굴에는 팩이 붙어있다. 글을 맺으며 후련한 마음으로 팩을 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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