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윤동주에 대해 별 말이 없다. 생전 처음 보는 것 같다.
역시나 제목과 지은이를 바로 떠올리지 못한다. 남편은 국문학 전공자다.
길. 윤동주. 이게 외워야 될 일인가? 이게 전공과 상관있는 일인가?
윤동주의 시, <길>
1연 외우는데 1주일 넘게 걸렸다.
남편이야 말로 잃어버렸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모른다.
남편은 치매의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끝이 보이는 병이다.
희망이니 극복이니 그런 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치매는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즉 진행하지 않는 것이 극복이라면 극복이다.
자연법칙을 거슬러야 하는 병이다.
정지해야 움직이는 역설.
치매는 진행되면 안 된다.
지금, 오늘. 현재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하루하루 생이 연장된다.
존재를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발버둥: 코나투스 conatus.
알츠하이머병에 있어 그 방법은 정지다.
한 달 후. 다 외웠다.
심지어 <길>과 <별 헤는 밤>과 <자화상>을 혼동하기까지 한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다른 시도 아니고 모두 다 윤동주 시잖아.
기억이 나는 걸까?
좋아지고 있는 걸까?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아 ... 비슷하긴 하구나. "까닭이고" 이 부분이 <별 헤는 밤>과 비슷하네...
돌담을 돌아? 산모퉁이를 돌아?
이건 또 <자화상>이네?
아...여기는 "돌아"가 비슷하구나.
기억이 났나?
좋아 졌나?
내 눈은 매의 눈처럼 남편을 살핀다.
어딘가 좋아 지고 있다는 걸 하나라도 찾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