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습관을 유지하기
남자는 모름지기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해야 돼. 평생 아버지 노는 꼴 보기 싫었어. 그래서 남편만큼은 꼭 직장이 번듯한 사람을 골랐어. 그런데 나이 마흔부터 집에 있잖아. 그래서 내가 나가는 거야. 언니는 또 백만 번째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평생 먹는 밥처럼 언니 레퍼토리는 똑같다.
얼마나 좋아. 성공한 남편하고 놀러 다니고. 그 나이에 남편 하고 불륜처럼 대낮에 방죽에서 오리배도 타고. 은하수도 보러 가고. 골프도 치고. 세상에 누가 들으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빠진다고 욕해. 복인 줄 알아.
나를 봐. 치매만 아니면 그저 다 고맙다고 생각하며 살아야지. 나도 같은 레퍼토리다.
우리 자매는 같은 레퍼토리를 늘 반복하면서 늘 만나 똑같은 얘기를 한다.
그래도 얘, 제부는 치매라도 바깥에 나가잖니. 헬스다 피아노다 시낭송이다 뭐다 뭐다 얼마나 바쁘니. 집에 있어도 같이 안 붙어 있잖아. 너는 너대로 제부는 제부대로 각자 따로따로 떨어져서 글 쓴다며. 그러니까 제부가 치매라고 해도 아직은 네가 살만한 거야.
맞다. 그건 그렇다. 어쨌든 출근하고 퇴근하고 했듯이. 지금도 그러니까 나도 좀 쉰다.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있으면서 밥만 차려다 바쳐야 한다면 못 살 것 같다. 말이라도 통하면 또 몰라.
일상의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좋은 습관으로 나아가기. 스피노자가 철학을 시작하며 품은 질문이었다.
지성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면서.
어쩔 때는 남편이 그냥 이대로 쭉 죽을 때까지 저 상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안될 것도 없지 않을까? 그러면 참 좋겠다 싶다.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도 십 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잖아. 그이도 보니까 남편 하는 거랑 똑같던데. 일본에는 또 얼마나 많아. 남편같이 유지하는 사람이. 십 년이면 괜찮지 않을까. 나이 칠십에 죽는다. 자연사한다. 억울하고 원통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유희하는 인간으로 십 년 노후를 살다가 자연사한다. 그야말로 자연스러운데. 내가 먼저 갈지도 모르고. 사람일을 누가 알랴. 나는 지금 당장 죽어도 상관없다. 아무런 삶의 미련이 없다. 단, 고통이 없어야 한다. 고통만 없다면, 수면마취했을 때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로 죽는다면 나는 아무 걱정 없을 것 같다. 하긴, 고통 없이 죽고 싶다. 이게 가장 강력한 생의 미련일지도 모르지.
관계의 본질은 무엇일까.
치매 걸린 남편인데 아직은 초기라며 어느 아내가 하는 말, 끝까지 직장은 다녀야 한단다. 벌 수 있을 때까지는 벌어다 줘야 한다며. 사람들이 알아차릴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
어떤 남자는 외도 중이다. 치매 아내를 간병하고 있다. 딸이 눈치챘다. 딸이,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묻어 두라 한다. 치매는 외도마저도 예외다. 오직 간병이 급선무다. 바람을 피우건 말건, 아들 딸이 알아채건 말건, 도리가 아니건 말건 상관없다. 심지어 치매 걸린 아내도 그것만은 아는 눈치다. 하지만 상관없다 한다. '간병하는 남편'도, 숨 쉴 구멍이 있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 꽃뱀조심.
돈 털릴 조심. 미리미리 돈은 빼돌려 놓아야 한다는 모두의 충고. 부부는 뭘까.
치매는 현실이다. 가장 현실적이다. 치매는 치매고 돈은 돈이고 아파트 상속은 아파트 상속이다. 치매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낭패 보기 전에 빨리 재산 정리 해야 한다고들 한다.
우리는 정리할 재산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지만. 치매가 아닌 부부는 이런 일이 없을까?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평범했던 일상은 거룩한 것이었다. 거룩함이 무너지고 그 폐허는 인간실격일까 인간상실일까. 뭘까 도대체.
아침에 나갔다가 오다 말고 엇나가는 남자들. 어디서 헤매고 있나.
수컷은 절대 제 둥지를 제 발로 차지 않는 법.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오는 좋은 남자들이여,
어서 집으로 돌아오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