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남편을 몰아붙이는 듯한 여성 회원의 전화 목소리.
"알았어요. 일단, 오케이!"
남편이 내 손가락을 보고 대답한다.
남편이 전화를 끊었다. 나도 동그랗게 말았던 ok 손가락을 풀었다.
남편의 전화는 남편이 받는다. 아직까지는 배우 윤정희 부부가 그랬듯이 폰 하나로 같이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받지 않는다 뿐이다. 옆에서 같이 들어야 한다. 내용을 파악하고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치매의 거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웬디 미첼은 말한다. 치매 환자를 장애인 취급하지 말라고.
또 나아가서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기 지도 말라고. 언제나 존중하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존중하지 않는 듯하면 나는 바로 고슴도치가 된다.
가시를 잔뜩 세우게 된다. 내 남편이다. 소릴 질러도 내가, 몰아붙여도 내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존중하고 있는가. 자문하기도 전에, 가시가 먼저 와 내 가슴에 박힌다.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엄마 아버지의 가장 큰 자부심이 하나 있다. 우리 사 남매 키울 때 손 하나 안 대고 키웠다는 것. 그렇게 '귀이' 키운 막내딸이 여고생이 되어 매를 맞고 왔을 때, 아버지는 교장집에 전화를 해서 따졌다. 나만 맞은 것도 아니다. 단체 기합이 흔한 시대였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괜히 나온 영화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분했다."나도 아까워서 매 한 차례 안 댔다." 여고생 허벅지를 먹구렁이가 칭칭 감은 듯이 멍이 들게 하디니! 우리들은 그때 모두 '매 맞지만 명랑한 여고생'이었다.
당사자 보다 보는 이가 더 마음이 아플 때가 있는 것이다.
여성 회원과 전화 통화를 하는 '해맑은' 남편을 봤을 때 나도 그렇게 속이 상했다.
단순히 전화 속 말투 때문만은 아니다. 치매라는 상황. 약해진 청력. 판단과 인지의 느린 속도.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스케줄을 잡는 답답한 과정. 내 가슴에 박힌 가시는 빠지지 않을 것 같다.
내 고독이 진주처럼 빛날 수 있을까.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다
태초부터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민들레의 영토에서
가슴 한 복판에 사랑의 깃발만 꽂으며 살 수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