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회수
하늘을 지붕 삼고 구름을 베개 삼는다더니. 방랑자는 눕는 곳이 곧 집이라더니.
내 집 안에 있어야 내 물건이라는 편견이 깨지려나. 남편 물건 있는 곳이면 곧 내 집인 건가.
비 맞고 갇혀 있었던 물건들이 속속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 물건들이 어디 떨어졌든 집을 찾아왔다.
자전거 빼고 다 제자리에 있다는 한국을 신기해할 만하다.
핸드폰과 그 안에 든 카드까지.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핸드폰에는 이름도 전화번호도 없다. 배터리 나가면 신호도 울리지 않는다. 위치추적도 안된다. 남편 핸드폰에 내 번호를 써 붙여 놔야겠다.
잃어버려도 되는 우산을 언니와 오빠가 많이 줬다. 우리 집은 빗살 떨어지고 손잡이 끈끈한 우산 천지다.
산속에 놓고 와도 가 보면 그 자리에 핸드폰이 있다. 어느 날은 공원 벤치에도 그대로 휴대폰이 있다.
주민센터에 놓고 와도 찾았다. 심지어 남편의 보조가방은 통영까지 갔다 왔다. 통영 갔던 회원 차 뒷자리에 한 달 방치 됐다가 돌아온 보조 가방. 박물관 갔다가 선생님 차에 두고 왔다고 하더니, 정작 다른 곳에서 발견된 문인화 준비물. 새로 산 화구통까지 찾아왔다. 물론 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써 붙여 놨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가져가지 않고, 전화해서 알려 주는 고마운 분들 덕분이다.
벗어 놓고 온 모자. 심지어 옷까지. 다음 수업 시간에 가면 있다.
싸게 주고 산 모자는 몇 번을 집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비싸게 주고 산 모자는 잃어버릴까 봐 그러는지 모셔 두고 쓰지 않는 남편.
그런데 이상하게 자주 쓰는 싸구려 모자는 며칠 안 보이면 나도 서운하다.
물건이란 것이 그렇다. 애착이 가는 것이다.
애착인형이 나도 있었다. 한 대여섯 살 때쯤인가. 신랑신부 목각인형이었다.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버렸던 것 같다. 몇 날 며칠 나는 울었다. 아버지와 큰오빠가 그 비슷한 것을 사러 다녔다. 비슷한 건 많았겠지만 똑같은 건 못 찾았다. 대신 더 크고 신랑 신부 모가지에 스프링까지 달려서 까딱까딱하는 기능까지 있는 걸 사 왔다. 하지만 끝내 나는 그것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애착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한 번 준 마음. 그래서 엄마가 정은 하나라고 했었나 보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내 물건은 버리기는 해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내 애착까지는 아니어도 선물 받은 것들. 오래된 것들. 시간이 붙어 가치가 생긴 것들. 나와 세월을 같이 보내는 것들. 언젠가 이별해야 하는 것들.
물건을 남편은 잘 잃어버렸다. 내 것을 말이다. 하긴 내가 쓰라고 줬었지.
아는 애가 일본 가서 사다 준 예쁜 필통. 또 다른 아는 애가 스페인 갔다가 사다 준 예쁜 필통.
민화 수업에 가져갔더니 여성회원들이 모두 예쁘다며 탐을 냈다던 내 물건들.
남편은 결국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아니 그런 것이 있었는지 조차 모른다.
애초에 왜 내가 그걸 줬을까. 아마 먼저 보내도 될 것들에 대한 내 무의식의 정리였을까.
한 번도 내 물건 잃어버려 본 적 없이 살아온 나와, 잃어버리는 게 제일 쉬웠어요 스타일로 살아온 남편.
어제 일도, 아침 일도, 방금 일도, 잃어버리는데. 물건 잃어버리는 게 대수겠나. 급기야 자기 자신도 잃어버리게 될 텐데. 그까짓 물건 잃어버리는 게 대순가. 그런데 나와 달리 남편은 어떻게든 찾아 오려 애를 썼다.
나름대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물어본 듯했다.
화구통을 찾았는데 그 뒤로도 문인화 전시했을 법한 곳에서 몇 통 더 전화가 왔었다.
새로 시작한 문인화반에서 박물관에 갔다고 한다. 집에 온 남편은 어김없이 또 하나 잃어버리고 왔다.
단체카톡에 화구가방 보신 분 있냐고 올렸다. 아무도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박물관에서 택시 타고 왔다고 하다가, 걸어왔다고 하다가, 그러다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남편이 간 곳이 박물관이 아니고 사군자 전시회장이었다는 것을.
남편이 잃어버린 물건들이 돌고 돌아 결국 집으로 돌아오듯, 멀리 나간 남편의 기억도 돌아올 수는 없는 걸까. 십 년을 떠돌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처럼. 더 강해져서 세상 경험 축적해서 그렇게 올 수는 없는 걸까.
한 번 준 마음. 정이 들고 애착이 가고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불어나듯이. 그런 나의 최애 인간, 남편.
오래된 애착인형을 수선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송을 본 적 있다. 너무나 이해가 간다.
언제까지고 소중히 간직하고픈 마음. 집착과는 다른 것 같다. 그 대상으로 인해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니까.
그 대상을 가짐으로 소유욕을 채우는 것과는 다르지 않을까.
나도 남편을 수선하며 살고 있는 걸까. 기억을 잃지 않게 건강을 잃지 않게 유지 보수하면서.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서? 오래전 수학여행 가는 길에 어느 군부대 앞을 지나가다 창 밖으로 본 표어가 왜 그렇게 나는 인상적이었을까.
치매안심센터에 남편의 지문 등록을 하러 가야 한다. 아직은... 아직은... 하면서 미뤘던 일이다. 만에 하나 길을 잃고 헤맬지도 모를, 만에 하나. 대비해 두어야 한단다. 아... 우리는 어디까지 밀려날 것인가. 돌아 올 기약만 있다면 어디까지 밀려 나든 상관없을 텐데. 삶이, 죽으러 가는 과정이라면, 죽기 위해 이렇게까지 버거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