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고?

by 채송화


나뭇잎 하나가 거미줄에 걸렸다. 하필. 공중에 덜렁. 오도 가도 못하고. 걸려 버렸다.


무성하던 잎들이 기운을 잃고 하나둘 가지에서 떨어져 나간다. 어김없이 계절은 간다.

그야말로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 해도,

익숙한 내 인생에서 떨어져 나와 엉뚱한 곳에 놓였을 때, 얼마나 막막할까.



남편과 영화를 보고 왔다.

"어땠어?"

"재미있네."

이게 끝이다. 감독도 배우도 줄거리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잘 들렸어? 자막이 없으니까 나도 잘 안 들렸어."

보청기를 꼈어도 잘 안 들렸다고 한다. 한국 영화도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결론.


"근데 주인공 남자가 누구를 죽였던가?"

남편이 묻는다.

"응. 이병헌이 해고당했잖아. 그래서 경쟁자들을 죽였잖아"

"그랬나? 두 명이었나?"

남편은 심드렁하다.


예전 같으면 보고 나서 집에 올 때까지 영화얘기를 했다.

나는 늘 감탄했다. "어쩜, 자기 평은 너무 독특해, 너무 새로워."

하지만 이제 영화에 대해 남편과 신나게 할 말이 없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치매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치매란, 인생이 해고되는 것일까. 인생의 '모가지가 짤리는' 것일까.


아니다. 해고되고 나서도 일상은 지속된다. 단지 똑같았던 일상이 달라질 뿐이다.

출근하면서 놓쳤던 것 못했던 것 할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살인할 시간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특히나 남편의 경우, 같은 치매 환자가 무슨 큰 경쟁자라고) 물론 돈이 있어야 일상이 유지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해고되고 나서의 일상은 또 출근하면 노동 시간에 얽매여 못하게 된다. 양손에 다 떡을 쥘 수 있나?


어쨌든, 나는 늘 좋게 생각하자고 한다. 일찍 은퇴하는 거라고. 은퇴하고 놀기만 하는 거라고.

그러기 위해 헬스도 하고 맨발 걷기도 하고 단백질 위주로 먹고 취미로 하는 사회활동을 하는 거라고.

얼마나 좋으냐고. 출근 안 해도 되고 말이다.

나는, 남편이 출근할 때면, 직장 그만두고 하루 종일 붙어 있자고 했었다. 그러니 귀촌하자고 했었다.

자급자족하면서 월든처럼 그렇게 살자고 했었다. 지금 그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팔자 좋은 일상이 어디 있냐고. 좋게 생각하자고 다짐한다.

말이 씨가 된다지만. 결과가, 전혀 예상 못 한 치매의 형식으로 실현될 줄은 몰랐다.




'해고'되고 좋은 건 아무 때나 내 시간을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낮에 산에 온다던가.

점심 먹고 맨발 걷기를 했다.

산에 아무도 없다.

이른바 '산스장'에도 우리 둘 뿐이다.

철봉도 평행봉도 어깨운동기구도 맘껏 한다.


소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숲 전체를 뒤흔들 기세로 울던 매미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참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남편은 한용운 시를 낭랑하게 낭송했다.

우리한테는 아직 교감할 감성이 있다.


시월, 가을 초입이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의미 없는 미련이다. 가을은 가을이고 겨울은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