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점으로든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반한다면 동화되고 싶을 것이다. 그런 감정만큼이나 누구의 스타일을 베끼는 것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니 절대 그것은 부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마음을 중점으로 나는 한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유명인이든 뭐든 혹여나 그 상대가 누구라도 그 누군가가 입은 옷에 대한 동경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옷을 갈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한가지의 무대 위에서 각기 다른 매력들을 가진 주인공들이 모델이 된 채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자연스레 주인공과 동화되며 점차 잘 차려진 옷에도 관심이 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로 브랜드에 중요한 존재인 '뮤즈'라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기에 동화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 그 자체가 되려는 행위를 하려는 것은 순수함을 가진 목적으로써 그 목표를 뛰어넘으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순수하다고 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뮤즈'가 아닌 '카피와 오마주'의 경계를 두는 잣대로부터 시험을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뮤즈'와 '카피와 오마주'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것일까?
뮤즈를 아주 대표적으로 활용한 브랜드 넘버나인의 경우를 본다면 커트 코베인을 형상화하는 것에서 옷 만에서의 노력만이 아닌 액세서리와 장치들을 그가 형상화되는 것을 넘어 그가 있는 환경을 재현했다.
절대적으로 나는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룩북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정보는 '이 옷이 예쁘다 그러니 당신은 사야 한다'와 같은 정보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을 주무대로 당신은 어떻게 입어 볼 수 있는지 혹은 무엇을 담으려 했는지 음식을 담는 듯 그릇에서 배치하는 것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카피와 오마주'가 되버린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적으로 스튜디오 촬영물과 야외 촬영물을 옷이 가진 스토리텔링을 굳이 구분하여 올바르게 옷에 맞게 사용되었는지 관찰한다. 개인적으로는 야외 촬영물을 더 선호하지만, 순순히 아름다움을 담아내려 하는 노력과 날 선 혹은 약간의 차가움을 더불어 만듦새를 보여주는 옷이라면 스튜디오 촬영물을 선호하며, 단순히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는 옷에 스튜디오 촬영이 들어갔다면 룩북마저 신경 쓰지 않은 듯한 느낌에 거부감이 든다.
룩북을 넘어 런웨이는 모델들에게 하나의 연기자로서 임무를 부여받고 디자이너가 구상한 뮤즈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중요시하며 얼마나 스토리텔링에 잘 구성되었는지가 중요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무대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무대는 옷을 선보인다는 입장보단 하나의 유기체처럼 모델을 관절로 이용하여 질서 있게 풀어 놓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옷을 구매하려는 것보단 관찰하게 되며 이입도 되지 않아 공감을 사지 못한다.
하지만 라프시몬스의 런웨이는 아주 강렬한 뮤즈가 선보인다. 어떤 날에는 크래프트가 언제는 반항적이고 정열적인 아이들 혹은 우주를 품은 공허함이
이 둘의 성향은 이 글에서는 둘을 가지고 두 가지의 성향을 두고 우열을 가르는 것이 절대적으로 아니다. 하지만 '뮤즈'의 존재 혹은 스토리텔링의 중요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아쉬운 마음으로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