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cat

by 목월하

독창적인 창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 하나인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지금 당장 손에 든 물건을 넣기위한 자켓의 주머니를 만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말타고 사냥을 즐기는 경우 불렛포켓이 등산가는 스트랩이 달린 주머니 혹은 주머니 자체가 없어 가방을 만지고 있을 수 있고 추운 날씨를 견디는 나라에 수출되는 옷의 주머니에는 안감에 털이 달려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하는 디자인은 사용자의 환경에 의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독창적인 창조물을 현실화하기위한 시뮬레이션과 현실의 단계인 창조를 할때 미형과 실용 중 하나에 초첨을 맞추어야 한다면 단순히 모형이 이쁘다고 차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누가, 왜 어떻게, 언제, 어떤 환경과 같은 입는 소비자가 원하는 혹은 상황에 이를 반영해여한다고 본다 이는 등산의 아이덴티티를 반영받은 나를 기준으로 한 이야기이기에 그럴 수 있지만 결국 옷의 종착지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주어진 결과에 집중해야한다.


그렇다면 미형은 중요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실용 뒤에 개선과 활용이 소위 '감성'을 자아내며, 이로써 자연스러운 미형의 기준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단순한 미형을 위해 앞선 실용의 사례 혹은 사유가 없을 경우 뜻 밖의 알 수 없는, 즉 형용할 수 없는 존재가 탄생하게 되며 입는 의미가 사라진 옷은 더 나아가 옷으로써의 의미도 상실하여 쓰레기가 될 것 이다. 그렇기에 이미 널려있는 디자인과 이야기들을 찾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거나 진부하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재미 없을 수록 우리가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대단했던 발전을 너무 당연하다라고 일방적으로 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영화를 예시로 지금에서 본다면 <저수지의 개들>이 지금은 지루 할 수 있지만 언더커버가 등장하는 영화 중 '장르적'으로 완벽한 영화는 앞선 영화처럼 별로 없다.


그렇기에 일단 본래 '주머니'의 모양이 이 모양이었는지 내가 사는 시대를 기점을 기준으로 디자인의 이유와 형태로 완성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 예시가 주머니일 뿐이지 분리되는 모든 부분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앞선 '짓'들을 해야하는 것일까. 바비 콜드웰이 포문을 연 블루아이즈소울의 시작, 백인이 당시 흑인의 음악을 얼마나 이해했고, 사용하고, 느끼고 기타 등등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 했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그건 카피나 상업적 이용에 불과하며,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로 랄프로렌의 입셍로랑 스모킹 룩 무단 도용 사건 이 있다. 랄프로렌은 당시 전쟁 이후 남성의 부재와 여성 사회참여의 가속화로 이를 응원 혹은 유니폼을 맞추 듯 내놓은 여럿 '디자인'된 작품을 랄프로렌은 쉽게 '리'디자인조차도 아닌 '스캔'을 했다. 그렇기에 문제가 카피가 문제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카피가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과연 어설프게 했다면 바비 콜트웰의 블루 아이즈 소울의 포문이 열렸까 싶다는 생각이 든다.

(Yves Saint Laurent은 1982년 프랑스 잡지의 Jours de France Madame 12월 호에 Donna Karan가 입고 있는 룩을 근거로 내세웠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마무리로 이 글을 정리하려고 한다. 필요한 만큼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논란이 가득할 글에 프로메테우스가 준 불에 나는 산을 태워 모두에게 불을 알릴 존재임을 알기에 그렇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필요성 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