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좋았지

너가 있어줘서

by 아비치크

이상하리만큼 몸이 부서질 것 같은 주말이었다. 모든 게 너무 재밌었다. 운동을 하면 하나 더 들 수 있을 것 같았고 이것만 해내면 또 다른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지막 횟수를 채우고 덤벨과 함께 나는 고꾸라졌다. 거친 숨을 내쉬며 블랙아웃이 오려던 내 정신을 다시 붙잡는다. 그런데 진짜 이러다 쓰러질 수 있겠다. 그런데 너무 재밌다.

나의 꿈과 목표가 더욱더 선명해져 갈수록 나의 모든 본성을 제약하려는 조급함도 늘어만 갔다. 심지어 언젠가부터 나의 행동이 값진 성취로 바로 나타났다. 몇년 간 나름의 시행착오를 거두며 만들어 낸 시스템이었지만 달콤한 결과물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나를 쉴 새 없이 채찍질했다. 행복했지만 지쳐가고 있었다.


너무 몸이 힘들어서 침대에 누워 전기장판을 켜고 책을 폈다. 오늘까지 대화의 밀도 독후감을 내야지. 그래야 설에 리브랜딩 준비하고, 오늘 터진 이슈를 대응하고 다음 책을 시작할 수 있어. 갑자기 들은 소식도 있어서 대안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기분 좋아야만 할 에세이였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편 페이지에서 작가는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머릿속을 비운채 반복하며 얻는 휴식이 소중하다고, 맥주 한 잔과 함께 좋아하는 것을 보는 시간이 그렇게 좋다고, 요즘의 자신은 심적인 피로보다 정신적 피로가 더욱 큰 것 같다고.


이불을 박차고 나와 캐비닛에서 나의 소울푸드인 고량주와 선물 받은 귀여운 잔을 꺼냈다. 내일 저녁에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어묵을 꺼내고 물을 올렸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끄적끄적.. 아 볼 게 없네. 유튜브나 봐야겠다. 핑계고 시상식 봐야지.


2시간이 넘는 긴 플레이 타임이었다. 영상 콘텐츠를 정말 보지 않는 나에게는 영화관에 간 것 외에는 몇 년만의 긴 시간이었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한 잔 하며, 국물을 떠마시며 핸드폰도 보지 않고 머릿속을 비워갔다.


자야 하는데 지금 자면 새벽에 깰까봐 틀었던, 영상의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하게 나는 기운이 났다. 너무 피로해서 억지로 먹던 음식들의 맛이 느껴졌다.


시상식이 끝나고 유재석이 참석해준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누추한 장소에 모여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강한 신뢰와 참석자에 대한 유재석의 진실된 감사함이 느껴졌다.

웃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순간 유재석이 된 것 같았다. 요새 나를 믿고 따라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내가 제안하는 것에 참여하고 즐겨주는 사람들, 가끔은 혼자 오더라도 나 하나 믿고 오는 사람들.

표현하지 못하고 가끔은 투덜대기 바쁜 나인데 그들은 나의 마음을 알아줄까? 그래도 저런 작은 표현에 더욱 충실해야겠다. 뭔가 저들의 신뢰감이 너무 부럽다. 올해 말에 나도 저런 행사를 진짜 기획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졌지만 그저 다들 보고 싶었다.


영상 속 권진아 가수님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았지. 나는 운이 좋았지.'

대화의 밀도에서 알게된 가장 소중한 대화는 나와의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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