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자세에서 온 인생의 명확함, 요가
춥지만 조금은 따뜻한 24년 겨울의 주말,
이 느낌은 주말이기 때문일까, 어제가 너무 추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늘은 설레임이 가득한 하루이기 때문일까.
좋은 분의 초대로 요가를 첫 체험하러 가는 길,
일요일 아침 9시까지 차로 40분 이상 걸리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상하게 짧게 느껴졌던 걸 보니 사실 날씨가 추웠을지도 모르겠다.
설레임과 걱정이 공존하는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따뜻한 채도의 조명과 함께
웃음 가득한 강사님이 나를 맞아줬다.
그녀의 미소 속 기대했던 바와 다르게 쉽지 않았던 자세들,
몸을 꼬아 나의 몸을 펴게 만드는 요가 자세들은
기울어있던 나의 균형을 기울여 맞춰 주었고
마지막 바닥에 누워 싱잉볼을 듣는 시간은
마지막 남아있던 긴장감을 울려 멀리 퍼트렸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긴장감과 함께 정신이 사라지고
얕지만 행복한 잠에 빠졌다.
싱잉볼이 이끈 달콤한 잠 속에서, 나는 달리는 내가 보였다.
오늘 이 휴식같은 시간을 위해
전쟁같은 속도로 달려온 이질감처럼
중학생 시절 한자와 일본어에 스트레스 받던 내가,
고등학교 시절 전공에 고뇌하던 내가,
대학생 시절 학사경고에 두려움을 갖던 내가,
사회 초년생 시절 원치 않은 직무에 좌절하던 내가
보였다.
왜 그랬을까. 왜 가장 긴장을 놓고 휴식하던 순간,
나의 가장 힘든 순간들이 떠올랐을까.
그리고 지금, 오늘 나는 여전히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었고,
대체 어떠한 날을 위해서 걷고 있던 것일까
또 하나의 파도가 흘렀다
초등학생의 내가 중학생의 나를,
대학생의 내가 회사의 나를 덮고
지금이 보였다.
지금 웃고 있던 나와 그 옆에 앉아 있던 가족,
그리고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그녀가 보였다.
과거에 주저 앉을 뻔 하던 나를 일으켜 준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밖을 보며 뛰어나가고자 신발끈을 묶고 있었던 것이다.
나긋하지만 또렷한 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묶던 신발끈을 놓고 앉았다.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주저 앉지 않았다.
그저 지금을 즐기고 현실에 행복할 수 있을까 살펴보았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모든 걸 찾아보고 싶었다.
돈, 명예, 성공보다 지금 이 '시간'에 소중함을 원했다.
해야 하는 것도 좋지만
하고 싶은 걸 하고
나를 아끼고 싶었다.
그저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요가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이렇게 평한다.
'어려운 자세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운동'
나의 달콤했지만 씁쓸했던 짧은 꿈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어려웠던 과거 속에서 현재의 안정을 찾게 해준 운동'이 아니었을까.
그저 쉬기 위해 노력했던 나와
깨닫기 위해 누워있었던 나.
어려운 자세여야 또렷한 정신이 오듯
고통의 과거와 걱정의 미래를 놓아야 행복한 현실이 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5년 뒤의 내 모습에 가장 관심이 있던 나는
5년 뒤의 내가 말하는 '괜찮아'라는 단어를 들었다.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