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조금 힘들지? 다 왔어. 저기만 올라가면 돼. 308 네이비.
작년엔 KFC, 올해는 맘스터치, 그리고 항상 있던 GS 25를 지나 야구장의 3층, 그 마지막 경사를 오른다. 나의 손에는 잠실야구장에서만 항상 함께 하는 그릴킹 치킨이 들려있다.
경사의 시작점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늘 그랬듯 오늘도 푸르른 하늘 밑에는 오늘따라 늠름해 보이는 전광판이 반짝반짝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린다. 아, 왼쪽인 걸 보니 우리 팀이 안타를 쳤나 보다. 저 방향은 홈쪽이다.
점차 푸른 잔디가 보인다. 탁 트인 시야만큼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심장 박동소리보다 조금 더 큰 함성이 나를 휘감는다. 올해도 이렇게 또 한 해가 시작된다.
나의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아마도 본업만큼 중요한 하나가 있다면 야구일 것이다. 사랑하고 증오하며 행복하고 괴롭다. 아마도 이 자극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나의 성격은 조금 더 온순했을지도 모른다.
한때 나의 인생이 이 팀과 같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10년이 넘는 암흑기 기간, 왠지 모르게 나의 인생도 풀리지 않았다. 패배한 날에는 너마저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울부짖은 적도 있었다. 6시 반부터 나의 감정은 요동쳤고 가끔은 조울증 같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나의 텐션이 떨어졌다면, 아마도 홈런을 맞았을지 모른다.
바보 같게도 지금 이 일을, 이 회사를 다닌 이유도 이놈의 야구 때문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회사 중에서 오로지 이 회사를 외쳤던 이유를 다들 알았다. 나의 다양한 변명에도 다들 속지 않았다. 이 회사가 팀의 계열사였기 때문이다.
회사에 와서 보니 야구 중계를 하는 팀이 생겼다. 커리어 패스고 뭐고 모르겠고 가고 싶었다. 팀장님을 만나 수년간 시도했고 결국 이동할 수 있었다. 기획자였던 나의 커리어 패스가 망가져도 괜찮았다. 그저 너무 행복했다.
이후 나의 삶은 덕업 일치 그 자체였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동료들과 나눈 이야기는 어젯밤 경기 스코어와 주요 장면들이었고, 점심에도 저녁에도 그 대화는 끊이질 않았다. 그래야만 마케팅 포인트를 뽑아내니까, 오늘의 푸시 메시지와 안내 문구는 내가 써야 하니까. 그리고 나의 업무는 늘 6시 반부터 2차전이 시작되니까.
방송사와 협업할 때마다 너무나도 설렜다. 상암의 방송사들은 수도 없이 돌아다녔고 스포츠 중계 피디님들과 친분을 쌓아 나갔다. 어떠한 상황에서 시청률이 올라가는지, 팀들의 인기순위가 얼마나 맞지 않는 오해인지. 왜 야구장에선 항상 미녀들만 찍어주는지 알게 되었다. 한 피디님은 당시 우리 팀장님께 고개를 절레 절레 저으며 이야기했다. 어쩌면 저렇게 독하게 야구 좋아하는 애를 뽑아 왔냐고.
출장을 가면서도 설렘에 잠을 못 잤던 건 구장 투어 때문이었다. 구단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통로로 들어갔다. 가끔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스카이박스와 같은 VIP석에서 미팅을 하기도 했다. 가끔은 협업하며 우리 앱의 로고를 구장에 수도 없이 설치하기도 했고, 수천 명의 야구팬들이 우리 로고가 담긴 깃발을 흔들기도 했다. 그날의 대전은 성심당 딸기시루보다 더 달콤했다.
행복했던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였을까, 업이 나를 갉아먹고, 주변인을 힘들게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9시의 첫 출근, 그리고 오후 6시 30분의 두번째 출근.(야구는 저녁 6시 30분에 시작한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재밌었기에 나의 체력이고 인내심이고 모르겠고 달렸던 것 같다. 그렇게 애정을 쏟다 보니 무엇인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민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민감했다. 그렇게 다양한 이유로 인해 팀을 떠나게 되었고, 지금은 그 팀이 사라졌다.
야구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책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가 없었다면 자신이 그 정도의 장편 소설을 써나갈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을 거라 했다. 나 역시 야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까?
만약이지만, 그랬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감정을 가진 내가 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징그럽게 괴로웠고 너무나도 자극적이었지만, 나의 모든 일에 대한 열정을 준 한 가지는 아마도 야구일 것이다.
취업 준비생 시절 면접 직전에 듣는 음악은 항상 잠실에서 녹음된 응원가였다. 4일 연속 직관하고 난 뒤 성대결절이 걸린 적도 있었고, 호구의 상징이라 불리던 키티 유니폼을 지금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에게 선물한 경험도 있다. 한 선수의 은퇴식에 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현실이 바빠 잠깐 놓치고 있었는데, 나의 모든 일생과 인생에 함께 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포기하면서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 나에게 더 중요한지를 알만큼 어른이 되었나보다. 가끔은 그때의 순수한 내가 그립지만, 누군가에게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나는 누가 뭐래도 잠실이라 이야기할 것이다.
올해도 빨리 그 경사를 오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