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새벽, 5성급 호텔에 밥먹으러 가는 이유

숙박도 없이 밥먹으러 호텔가는 이야기

by 아비치크

'따르르르.. 뚝'.


새벽 5시, 오늘은 조금 이른 아침이다. 평소보다 서둘러 본다.

15분이면 가는 회사의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차를 몰아본다.


오늘의 행선지는 3개월 마다 가는 그 곳, 강남의 한 호텔이다.

오늘 나는 그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의 목표는 그저 하나, 아침 식사다.


평소의 나라면 준비하느라 바쁠 새벽 6시, 도로에는 차가 한가득하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또 한번의 바쁜 하루를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을 걷는다.

모두의 하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갈림길에서 나 혼자 왼쪽이다. 호텔에서 빠져 나오는 차들을 지나쳐 들어간다.

집과 다른 너무나도 쾌적한 주차장에 감탄하지만, 마치 항상 겪는 일인양 표정관리를 해본다.

웃긴다.


주차를 하고 호텔 정문으로 들어간다. 괜시리 이런 곳에서는 문을 열어주시는 분과 인사를 나눈다.

이상하게 친절하고 자애롭다. 기분이 좋다.


오늘도 목적지는 24층이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호텔 식당 앞에 앉아본다.

아직 일행이 도착하지 않았다.




약 1년 전, 독서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롤모델이자 많은 가르침을 주신 모임장께서는 평소 조찬 모임을 즐겨 하신다며 우리를 초대해주셨다.


태어나서 가보지 못한 호텔에서, 그의 사무실에서 아침을 맞이 했다.

각자의 삶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한가닥 할 사람들이 마음을, 식견을, 정보를 나누고자 모였다.


영하 22도의, 차가 얼어 붙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 날에도 모였었다.

그 추위를 뚫고 7만원을 내고 아침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말이 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알았다. 왜 우리는 그 곳에서 밥을 먹어봐야 했는지.

경험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 가득하다.


어슴푸레한 새벽녁의 공기가 사라지고 햇빛이 비치는 시간,

정갈히 깎여 있는 과일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서있고,

버터향 가득한 빵들이 방금 오븐에서 튕겨져 나와 향을 뿜으며 누워 있는,


새벽부터 일어나 아까 보았던 차들을 타고 출근했겠지만,

마치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친절함을 가득 담은 직원들과


여행에서 묵었던 숙소들에서 본 츄리닝에 슬리퍼를 끌고 있는 손님들이 아닌,

정갈히 머리 빗고 풀 메이크업을 한 채로 수트를 입은 수많은 비즈니스 오피서들이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시작한다.


아마도 그들의 대화는 수천의, 수억원의 가치가 교환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들의 비즈니스는 7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곳에서 7만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 대화를 나눈다.




어떠한 대화가 오고 가는지도 중요하다.

각자의 삶에서 있었던 일을 복기한다.


서로 다른 터전에서 가진 경험을 공유한다.

맞이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경험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당신의 의사결정은 어떠한 생각으로 이루어졌는지,

그의 선택은 누군가의 어떠한 본보기가 되어 줄 것인지,

나의 고민은 그녀의 몇 년 전 시행착오의 한 페이지에 적혀있던 것과 같은지


서로를 응원하고 부러워하고 조언하며 시간을 보낸다.

각자의 분야에서 가진 경험들이 새로운 가지를 더해준다.


같은 이야기를 누군가는 목적을, 누군가는 대상을, 누군가는 수단을 본다.

서로 다른 식견들이 생각지 못한 길을 제안해준다.


9시라는 데드라인은 이 시간의 가치를 더해준다.

모자라기에 더욱 소중하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올해의 목표를 하나 또 배워간다.





멤버분들이 속속들이 도착한다.

어디에서나 뵐 수 있는 친근한 형, 누나들일지 모르지만

각자의 터전에서는 말 걸기도 어려운 전해져 내려오는 능력자일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앞에서 화를 내는 부장도,

집에 터벅터벅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도,

7만원짜리 식사에서는 찬란한 빛을 내는 참 어른일지 모른다.


그렇게 공간의 힘이 사람에게 스며들고, 편안하지만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다면,

앞으로의 식사와 공간은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 곳에서 종종 함께 하는 건

쉽지 않지만 설레는 조금 이른 아침이

생경하지만 아늑한 빛을 비추는 공간이

우리의 대화를 조금 더 설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7만원의 아침 식사를 기다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취향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a.k.a 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