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함께 갈게요!"
의외였다.
친절하지만 친하지만은 않은, 몇 번의 짧은 만남으로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는 독서모임이 끝난 밤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집에 가려던 아저씨들은 자신만의 합당한 이유로 한잔을 더 하자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이도 모르지만 누가 봐도 막내일 것 같은, 여자 혼자 같이 걷던 그 친구가 함께 한다고 외친 것이었다. 그렇게 조금은 피곤했던 금요일밤의 강남역, 또 한번의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신선했다. 이번 독서 모임의 사람들은 대부분 모임을 처음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사실 독서 모임을 처음 진행하는 이들의 목적은 대부분 이성이다. 책을 읽고 좋아하는, 어쩌면 조금은 보장된 좋은 사람을 만나겠다는 욕망. 어쩌면 당연하지만 그러다 보니 조금은 희석되는 의지. 첫 모임에서 너무나도 조용하고 말이 없는 대부분을 보며 이번 모임은 망했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 중에 눈에 띄던 친구가 둘 있었다. 매번 이 독서모임을 위해 지방에서 KTX를 타고 올라오던 한 남자 아이. 이 친구는 혹시나 몰라 모임 끝나고 4시간이 넘게 시간이 남는 막차를 예매하곤 했다. 뒷풀이에 항상 남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성공하고자한 욕구가 강했다. 그러한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항상 화가 나있는 그의 몸보다 더 또렷했다.
그리고 이 친구였다. 눈에 띄는 외모와 함께 누가 봐도 아기 같은 피부와 달리 생각이 또렸했다. 조금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성격도 반전이었다. 무엇이든지 해낼 것 같지만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예의 깊게 말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어려보이는 친구가 왜 이런 모임까지 나왔냐고 물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고 했다. 듣고 싶어하는 친구가 요새 있었나..? 놀라운 답변이었다.
주문한 맥주가 나왔다. 체코의 생맥주를 파는 집,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맥주를 자연스럽게 고른다. 하지만 두 친구가 머뭇거린다. 체코의 맥주를 먹어 본적이 없다는 두 친구. 간단히 특징을 설명해주고 추천해준다. 생경하다. 함께 술을 하는 친구가 맥주의 종류를 모르는 경험이 언제쯤이더라. 너무나도 생경해서 신선했다.
"저 생각보다 더 어려요."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올해 나이가 22이란다. 38, 39인 우리들의 말문은 턱 막혔다. 나의 22살은 어땠던가. 그저 군대에서 세상을 한탄하며 욕을 하기 바쁘고, 복학해서 새로운 여자 한 명 만나보겠다고 힘쓰던 나이 아니었나. 그런 나이에 이렇게 부지런하게 책을 읽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친구라니 말문이 막혔다.
고민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꿈인 학교가 있는데 한 두 문제가 모자라 3수까지 했다고 한다. 이번에 한 번 더 도전할까 고민이라고 했다. 전문직을 꿈꾸는 그녀의 이야기는 또 한번 나에게 생경함을 주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미래를 꿈꾸는 이야기, 언제쯤 들었던 걸까?
옆에 있던 남자 아이가 거들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그 친구는 자신의 브랜드를 전국의 모든 이에게 먹여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2년 정도는 휴일도 반납하고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다음 모임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너무나도 소중했는데 아쉽다고 했다. 빈말일 지 모르겠지만 그의 눈빛이 아니라고 살짝 이야기해주었다.
꼰대 아저씨들의 말이 쉬지 않았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고민하고 상담해주었다. 아저씨들이 말을 거들어선 안된다고 스스로 자제하다가도, 그들의 꿈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우리가 밀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 반짝반짝 거리는 꿈의 소리가 너무 커서 내 심장이 대신 설레었다. 그들의 청춘이 빛을 발화했다.
서로를 보며 설레여했다. 우리는 그들의 꿈을 설레했고, 그들은 우리를 보며 꿈을 이룬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설레어 했다. 그저 회사의 과장, 차장으로서 현실에 치여가는 우리를 보고도 정상에서 소리치는 등반객처럼 여겼다. 세상이라는 그들이 오를 힘든 산을 이미 오른 등반대장처럼 여겨줬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아꼈다.
어른들이 간단하게 맥주 한잔을 샀다. 이러지말라고 돈 내도 괜찮다고 어쩔줄 몰라하는 그들이 신선했다. 그저 만원 한장씩 더했을 뿐인데, 이래도 되는 거냐고 따로 물어보기도 했다. 나중에 만날 그들의 후배들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고작 만원에 이런 소리 해도 되는건가? 그런데 정말 이렇게 고마워해도 되는건가? 싶다.
스티커 사진을 찍자고 했다. 네컷이 어색한 아저씨들이 부끄러워 했지만 함께 갔다. 20대의 얼굴 하트와 30대의 손하트가 달랐다. 어디를 보아야 할 지, 얼마인지도 몰랐다. 결과물은 중요하지 않았다.
청춘이 빛났다. 꿈이 빛나고 있었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둔 그들은 정해진 미래를 가진 우리가 부러웠다. 계산할 수 조차,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미래를 가진 그들의 보물들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장점을 보는 이 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사는 걸까? 우리는 그 빛나는 청춘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우리는 그들에게 어른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되는 삶일까?
오늘도 그렇게 청춘은 스스로의 고민으로 색깔을 바꾸어 가며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우리가 먼저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