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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속도로, 나와의 레이스를 달리다.

하프마라톤에서 배운 인생의 진리

by 아비치크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될 것 같아 굳이 도전하지 않는 일.

나에게는 '하프마라톤'이 그랬다.


스키, 헬스, 크로스핏, 클라이밍 등 다양한 운동을 해온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성한 곳이 많지 않았다.


보드 중 다친 무릎으로 인해 모두가 즐기는 마라톤은 사실

나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느덧 40대를 직면하는 어느 날,




회사 형님들의 제안이 왔다.


"우리도 하는데, 네가 못할 게 뭐 있어?"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도전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4km를 뛰었다.

무릎이 버틸 수 있는 거리를 짧게 끊으며 꾸준히 준비했다.

그렇게 디데이가 다가왔다.




설레는 그 날.

수 만명의 사람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


'탕'하는 총성과 함께 시작된 레이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물음표가 가득차기 시작했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력질주를 하며 뛰어나갔다.


모두가 나를 앞서갔다.

아니 그냥 내가 뒤쳐지고 있었다.


너무 의아해서 차고 있던 시계의 속도를 확인했다.

4분 40초 대. 오버페이스다.


사실 힘들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 가득으로 시작한 시간,

얼마든지 이 상태로 새로운 기록을 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 속도를 지키기로 했다.

영화속에서 타임머신 속 혼자 걷는 사람처럼,

남들은 뛰는데 마치 나혼자 걷듯, 산책하듯, 조깅하듯

그렇게 한쪽으로 빠져서 묵묵히 뛰기 시작했다.


속도를 계속 확인했다. 내가 원헀던 속도였다.

내가 혹시 과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뒤쳐지지 않을까.

고민보다는 그대로 계속 뛰었다.


하지만 신기하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나는 나와의 경쟁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나는 이 방법만이 이들을 앞서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확인 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만의 페이스가 내 방법임을.


그리고 그건 수많은 도전과 그로 인한 아픔들이 알려준 나의 경험이었다.





달콤한 내리막길에서도 욕심내지 않았다.

내리막길에서 설레다보면 알게 모르게 무릎이 무리를 한다.


과거의 부상이 알려준 교훈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자제했다.

또 나의 경험이 알려줬다.





절반이 지났을 무렵, 나도 모르는 신기한 일이 있었다.


7분 이상 먼저 시작한 지인이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앞선 그룹들의 사람들이 점차 많이 보였다.

그들이 지쳐 걷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을 응원하며 나는 계속 달릴 뿐이었다.


결국 마라톤 최대 거리를 2배 이상 늘리고,

목표 시간을 12분이나 앞당기며

1시간 58분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억지로 나의 몸을 이끌어 나아갔다.


무릎에 신호가 오면 허벅지를 조금 더 쓰려 했고,

허벅지가 아프면 종아리를 조금 더 쓰려 했다.


하체가 지치면 상체의 움직임으로 버텨보려 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던 새로운 방법을 찾아 한 발짝씩 더 걸어봤다.


그리고 결코 멈추지 않았다.

마라토너이자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만 생각하며

단 한 번도 걷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번 마라톤에서 나를 지탱해준 건 두 가지였다.

측정할 수 있는 도구, 그리고 경험


애플워치는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려줬고,

경험있는 선배가 챙겨준 에너지 젤과 작은 준비물들은 큰 힘이 되었다.


처음 받아본 바나나를 급하게 먹었다가 고생하기도 했지만,

하프마라톤을 처음 해본 나였기에 계획과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모든게 너무나 뜻깊고 중요한 시행착오였다.




나만의 속도와 꾸준함이 중요했다.

나는 계속 같은 속도로 달렸고 그들을 제쳤다.

그리고 그들을 제친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나는 나와의 싸움에 집중했다.


나를 측정하고 메타인지를 도울 도구들과 함께 했다.

애플워치가 나를 알려주고 나의 신발이 자세를 계속 잡아주곤 했다.


경험과 계획/준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선배가 준 에너지젤은 마지막 고비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든든함이었고,

바나나가 준 목막힘은 경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했다.


그렇게 나의 마라톤은 인생의 수많은 진리와 교훈이 함께 했다.




내 인생의 마라톤도 같을 것이다.

가끔은 느린 속도에 좌절할지도 모른다.
결혼, 성공, 이직…

모든 게 늦은 듯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만의 속도로, 흔들림 없이 걸어가려 한다.
나를 기록하고, 계획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러다 보면,
이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도
나 자신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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