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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낭만과 기대가 가득한 밤,

또 한번의 비효율을 꿈꾼다

by 아비치크

"요즘 그런 적이 많지 않은데, 이렇게 즐겁게 술 마신 적이 언제인가 싶어요."


뜻밖이었다.

애정이 묻어나는 행동에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이 친구가 우리에게 이토록 마음을 담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누군가는 피상적인 의견 교류로서, 누군가는 진심으로 사람을 원해서 모였을지 모를 사회에서 만난 한 커뮤니티.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뒤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기도 한다. 학창시절에서 만난 사람들 외에는 오래가기 어렵다고.


슬프게도 그걸 꽤 많이 현실로 느꼈기에, 나 역시 언젠가부터 사람들에 대해 기대를 접었다. 모두의 필요성으로 사람을 만나고, 그 필요성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난 그게 인생이라 믿었다.


나의 기대치만큼, 나의 애정만큼 사람을 대하다 보면 돌아올 것에 대한 기대가 생긴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상대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돌아올 것에 대한 기대는 당연히 접어야 한다는 것을.


이곳도 그러리라 믿었다. 사실 평소보다 더 기대가 낮았다. 그들의 조용함이 나 그리고 이곳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라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커뮤니티란, 사람들이란, 이렇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꽤 오랜만에 모인 자리, 첫 테이블은 서로를 위한 최선으로 채운다. 더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찾아 본 회 한접시는 노량진은 다르지 않냐는 허세로 채운다. 진실이 아님을 알아도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서로를 속인다. 입을 가득히 채운 두툼한 식감을 넘기기에도, 한 달의 공백을 서로 채우기에도 벅찬 우리의 입은 너무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함께 한 시간이 만들어 냈던 에피소드가 자리를 채운다. 큰 형님이 용돈을 주었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그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는 어떠한 기대도 담지 않았을까? 그의 진실하고 온건한 태도를 이제껏 모두가 소중히 이해했을까? 그의 과거는 그리고 그의 현재의 태도는 어디서 왔을까? 어쩌면 그의 행복한 요새 하루하루는 그러한 신실한 마음이 만들어 낸 행복한 결과일까? 묻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의 잔과 마음을 채워준 답례품, 와인 3병이 답을 대신했다.


2차를 나선다. 추억이 가득 담긴 거리. 함께 했던 이들과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아니 너는 지금 내가 보는 이 건물에 있을까? 그런 잡생각이 들때쯤이면 곁에서 재잘되는 친구들의 웃음이 나를 현실로 끌고 왔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잡생각'이다. 이제는 24시간, 365일을 함께 '했던' 누군가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것임을, 이 작은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함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청춘이 빛나는 거리에서, 그가 그 말을 꺼냈다. 이상하게 행복한 자리라고, 언젠가부터 이렇게 술을 마신 기억이 없다고. 왜 이러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고. 우리도 답을 하지 못했다. 모르겠다, 아니 답이 없는 것이 답인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하지 않고,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도 기대를 조금 더 해보기로 했다. 사장님이 추천해준 이름 모를 소세지는 마진이 가장 남는 메뉴일지 모른다. 답례품의 와인 값보다 비싼 콜키지 비용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일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사장님의 추천이 진심이라 믿고 소주보다 와인의 달콤함을 기대한다. 그저 낭만으로 믿고 추억을 쌓는 과정이리라. 생각보다는 감정이 남으리라. 그게 누군가가 집착하는 MBTI의 진짜 의미 아닐까. 나는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는 지 아는 것.


2025년, 우리만의 낭만을 꿈꾼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며, 우리의 입꼬리를 조금 더 올려주는 작은 미소라며, 그렇게 믿으며 서로의 시간과 소중한 주말을 채운다. 집보다 더 포근한 대화를 나눈다.


우리가 그토록 외쳤던 낭만이 무엇일까. 그저 서로를 위해 조금은 희생하고, 먼 길을 오더라도 불평없이 우리가 맞이 할 즐거움을 조금 더 느끼는 것 아닐까. 1~2시간의 만남을 위해 2~3시간의 이동을 불평없이 견디는, AI 시대에 세상 바보천지 같은 그 행동들이 우리를 오늘도 살게 한다.


또 한 번 바보 같은 짓을 하고, 또 한번 의미 없을지 모를 기대를 하고, 또 한 번의 효율적이지 못한 행동을 한다. 이번의 너는 내 기대를 꺾지 않으리라 믿으며 말이다.


이미 수십, 수백, 아니 수천 번도 더 넘게 꺾인 기대다. 더이상 사람을 믿지 않기로 했었다. 최근에도 나의 가장 큰 기대가 꺾이지 않았나. 나는 무엇인가를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나의 기대는 누군가에게 부담이자 허세로 느껴진다고 스스로 느끼지 않았나. 그렇게 자제하기로 하지 않았나. 아니 어떠한 감정도 베풀지 않자고 다짐하지 않았었나. 나에게 감정은 사치라 여기지 않았나.


그래도 그 복잡한 머리를 씻어내려보려 한다. 닭도리탕 세트의 부추전에 행복했던 내가, 감사하게도 이를 아직까지도 행복하게 여겨줄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이모님에게 애교 부리고 칭찬해서 얻어냈을 20대에 비해 3천원을 추가해야 하는 나이지만, 그것 역시 낭만이라 믿는다. 사장님은 3천원을 기대하고, 나는 추억을 기대한다. 그저 우리는 오늘도 낭만을 적실 뿐이다. 나의 기대는 언젠가 꺾이겠지만, 꺾이기 전까지 매일의 행복을 채워 나간다. 그렇게 또 한 번 바보같은 항해를 준비한다.


우리의 낭만은 또 한 번 4개월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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