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또 하나의 추억을 더하다
행복한 감정이 기억을 뒤덮은 다음 날.
언젠가부터 생겨버린 숙취로 인해 하루 종일 정신을 못 차렸더니
생각나는 나의 최애 음식, 부대찌개.
운동을 마치고 단골 밀키트 집의 문을 열자,
요즘은 귀해진 종소리와 함께 사장님의 포근한 웃음이 나를 반겼다.
"몇 명이서 드시는데요"
떡볶이가 새로 나왔다길래 베스트 메뉴를 묻자,
사장님은 가장 저렴한 메뉴가 맛있다며 멋쩍게 답하며 웃었다.
의외였다.
마케터로 몇 년을 살아서 그런가,
추천, Best, Signature라는 단어에 민감하다.
정말 자신이 있거나, 마진이 많이 남는 메뉴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나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솔직하고 따뜻한 추천이었다.
늦은 저녁이라며 헬스장은 어디 다니냐 묻는 사장님,
그와 한참 동네 이야기꽃을 피웠다.
생경했다. 나 역시 이 곳이 이상하게 포근하게 느껴지긴 했는데
이유는 사실 잘 몰랐다.
하지만 이미 음식을 받아두고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건,
사장님의 포근한 웃음과
그 웃음 뒤 살짝 비친 쓸쓸함,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을 향한 온기때문인 것 같았다.
문득 대학교 첫 방학 때 떠난 유럽 여행이 스쳤다.
도착하자 마자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하고 잔뜩 겁에 질렸던 벨기에.
당시 우리나라에 거의 없었던 고디바 매장을 보고
신기하지만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주문을 했었다.
"하하. 자네. 한 번 더 바꾸면 안 팔거에요! Milk Sold Out."
친구가 마음이 바뀌어 메뉴를 바꾸려 하자,
사장님은 긴장된 말투가 보였는지 웃으며 장난을 걸어주셨다.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했다.
나는 당시 무엇을 사고 팔며 감정을 교류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었는데
처음으로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닌, 서로의 필요한 것을 교환하고,
이를 감사히 여기는 기쁨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오늘, 그 행복이 서울에 왔다.
이 동네에 산 지도 어느새 1년.
낯선 서울 한복판에서, 나는 조금씩 이 지역의 일원이 되어 가고 있다.
오늘도 헬스장에 들르며, 문득 사장님이 계신지 먼저 살펴볼 것 같다.
그를 다른 곳에서 또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