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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의 도원결의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려 한다

by 아비치크
오늘이 들었던, 그 꼭 잡아야 하는 기회인가봐요

큰 형님이 수줍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설레임을 느끼고 있던 그때,

함께한 이 역시 나와 같은 생각임을 이해하고 벅차올랐다.


오늘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만의 도원결의를 다짐하고 있었다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열정으로 가득찬 내 삶에서도 눈에 띄는,

도드라지는 불꽃을 가진,

어린 나이에서도 10개가 넘는 사업을 하던 친구가

모든 걸 접고 갑자기 낡은 모텔 건물을 사서 리모델링을 했다.


거주하던 곳과 가까웠지만 너무나도 의외의 장소였다.

길이 있는지도, 지도를 보고도 찾아가기 힘든 쪽방촌의 작은 공간


어떠한 생각으로 도전했을지, 그 확신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든 것이 궁금해 커피챗을 요청했다




가는 길에 놓여 있던 쓰레기 더미,

작년에나 쓴 것 같은 크리스마스 전구가 여전히 걸려 있는

조금은 음침하고 걷는 내내 의아함이 사라지지 않던 입구를 지나


유달리 우거진 숲을 헤매야만 나오는 오아시스처럼

외관은 그 힘을 웅크리고 있지만 내부는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찬

색다르고 신선한 공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릴적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하면 떠오르는

숲 속에서 혼자만 도드라진 잘 갖춰진 공간이 아니라

주변 빈집들과 너무나도 비슷한 외관이라 멋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어쩌면 친근한 겉모습과 다른 주인의 센스와 감각이 가득한 내부는 자신만의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항상 그랬다.

이 친구는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할 줄 알았다


그저 탕비실로 쓰이는 공간에도 외관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도록

근처의 오래된 역사의 누적물을 볼 수 있도록 창을 열어두기도 했고


방마다 다른 향을 사용하며 여러번 오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돕기도 했다


이 공간의 주인으로서 어떠한 생각과 기획을 갖고 만들었는지 물씬 느낄 수 있는,

오너의 이름이 없지만 이름을 가려도 누구의 기획인지 알 수 있는 그런 공간.


정체성이 강하게 도드라지는 한국의 정서가 물씬 담긴 공간을

세계인 모두가 즐기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이가 만든 공간을 소개한다며

이동한 주변의 카페


한국의 색채를 가득히 간직한 공간 속에서

나는 입구를 지난 것이 아니라 세월을 거슬러 올라온 것인가란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


자개장으로 이루어진 벽 아래는

바리스타나 쓸법한 모던한 주전자가 테이블 마다 있었고


덴마크나 북유럽에서 왔을 법한 스피커 위에

역사를 가늠조차 하기 힘든 청자가

한때 꽃을 가득 피웠을 나뭇가지를 품으며

병풍 속 그림 같은 분위기를 내었다


한국의 색채를 현대적으로 재생하며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다를 마음껏 뽐내는 공간이었다.




공간의 힘일까


일상 속 일탈과 같은 공간에서

일상 속 꾸었던 꿈을 나눴다


어릴적 생활 기록부에 적었지만 선생님도 웃고 넘어갔던 이야기부터

더 어른이 되기 전 한번쯤 시도하고 싶었던 나만의 이야기들


왜 이러한 공간이 필요한지, 어떻게 우리는 고민할 수 있는지

무엇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지


결국 꿈이야기였다.

각자의 꿈을 듣다보니 각자 간직만 하던 생각이 그려졌다.


조금은 다르지만 서로를 강하게 신뢰하는 세명이 모여

각자의 꿈이 만들어내는 교집합을 찾고 있었다



"도원결의인가요?

도원결의는 복숭아 나무 밑이었던 것 같은데
나무가 여기 하나 있네요."


도시를 재생한 그 카페에 있던 나무,

그 나무를 보며 우리는 삼국지의 도원결의가 떠올랐다.


유비, 관우, 장비는 아마 서로를 보며 무척 설레였을 것이고

자신이 그려나갈 미래를 상상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우리가 알고 있듯 조금은 아쉬운 이별일지라도

그들이 떠나는 그 순간 겪어온 삶이 너무나도 설레였다고 느꼈지 않을까





'오늘이 들었던, 그 꼭 잡아야 하는 기회인가봐요.'

큰 형님이 한 마디 덧붙였다

예언을 즐기는 친구가 며칠 전에 전화를 주었다고

다음주에, 좋은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꼭 잡으라고 했다고


그리고 그 전화의 말이 바로 이 이야기 같다고.


누군가의 꿈을 함께 하고 꾸고, 같이 걷는 다는 것,



누군가의 꿈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스윗하고 로맨틱하며 자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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