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상대가 있다
스물두 살 봄, 나는 처음으로 '운명'이라는 단어를 믿게 되었다.
미술관에서 만난 그 사람은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20분간 서 있었다. 그리고 다가와서 말했다. "이 그림 속 감정이 정말 절절해요. 작가분이 어떤 마음으로 그렸는지 궁금해요."
그때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이 내 운명의 상대구나.'
하지만 그 사람과의 관계는 6개월 만에 끝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서로 다른 미래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말 #011: "운명의 상대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믿었을 법한 이야기다.
나는 로맨스 영화와 소설을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서 진짜 믿었다. 세상 어디선가 나만을 위해 태어난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고. 우연히 만나게 되면 서로 한눈에 알아볼 거라고.
첫 번째 연인과 헤어진 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진짜 운명의 상대가 아니었나 보다"며 다음 사람을 기다렸다. 두 번째, 세 번째... 헤어질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문제는 '운명의 상대'라는 개념 자체였다. 운명의 상대라면 모든 게 완벽해야 했다. 취향도 맞고, 가치관도 맞고, 생활 패턴도 맞고, 미래 계획도 맞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MD로 일하기 시작한 후 만난 사람과 3년 정도 만났다. 처음에는 "이번엔 정말 운명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퇴근 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고, 상대방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나는 CEO로 독립하고 싶어 했고, 상대방은 안정적인 삶을 원했다.
결국 깨달았다. 운명의 상대는 없다. 다만 서로 맞춰가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거짓말 #012: "사랑하면 모든 게 괜찮아진다"**
사랑이 만능열쇠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화가와 소설가로 고군분투하던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것들도 견딜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있으면 가난도 외로움도 불안함도 모두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연애를 할 때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많았다.
데이트 비용 때문에 더 경제적 부담이 컸고, 작업 시간이 줄어들어서 창작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상대방이 내 작품 활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갈등이 생겼다. "그림 그려서 언제 돈이 돼?" "소설 써봤자 뭐 해?" 이런 말들을 들을 때면 사랑보다는 현실의 벽이 더 높게 느껴졌다.
MD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야근이 많은 시기에는 연인과 만날 시간이 부족했고, 그로 인한 다툼이 잦았다. 사랑이 있어도 업무 스트레스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연인 시간까지 빼앗는 일"이라는 죄책감이 더해졌다.
사랑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다. 다만 문제를 함께 견뎌낼 동반자를 만들어줄 뿐이었다.
**거짓말 #013: "진짜 사랑을 만나면 바로 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운명적인 만남, 첫눈에 반하는 사랑, 천둥 번개가 치는 것 같은 전율.
나도 그런 걸 기다렸다. 진짜 사랑을 만나면 온몸에 전기가 흐르고, 시간이 정지하고, 세상이 달라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좋은 관계들은 대부분 천천히 시작되었다.
대학 동기와 만났을 때는 처음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같은 과 친구 정도로 생각했는데, 함께 작업하고 전시 준비를 하면서 점점 좋아지게 되었다. 극적인 순간은 없었다. 그냥 서서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MD 시절 회사 동료와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업무적인 관계였는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의 일하는 모습,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점점 호감이 생겼다.
"바로 안다"는 건 착각이었다. 사랑은 발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거짓말 #014: "사랑은 노력하면 지킬 수 있다"**
"사랑도 관리가 필요해", "노력하면 관계를 지킬 수 있어"라는 말들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기념일을 챙기고,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연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외워두고, 관계 개선 책도 읽어봤다. 연애도 일종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성실하게 임했다.
하지만 관계는 혼자 노력한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이 마음이 떠났으면 소용없었다. 내가 CEO로 독립하겠다는 꿈을 이야기했을 때, "너무 불안정해 보인다"며 반대하던 연인과는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데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반대로 서로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때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관계가 자연스럽게 유지되었다.
사랑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궁합의 문제였다. 맞는 사람과는 쉽게 맞춰졌고, 안 맞는 사람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웠다.
**거짓말 #015: "첫사랑이 가장 순수하다"**
"첫사랑은 잊을 수 없어", "첫사랑이 가장 아름다워"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래서 첫사랑에 대한 환상이 컸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첫 연인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그때의 설렘, 그때의 순수함, 그때의 간절함... 모든 게 아름답게 기억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 관계는 미숙했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면서 좋아한다고 했고, 현실적인 고민 없이 감정에만 의존했다. 상대방이 화가 되겠다는 내 꿈을 지지해 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 역시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사랑은 '순수'했다기보다는 '단순'했다. 복잡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단순함이었다.
오히려 지금 나이가 되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깊이 있다. 서로의 과거를 알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함께 그려볼 수 있다. 첫사랑의 순수함보다는 성숙한 사랑의 깊이가 더 값지다.
**현실은 이랬다**
지금의 나는 사랑에 대해 훨씬 현실적으로 생각한다.
운명의 상대는 없다. 다만 서로 잘 맞는 사람과 만나서 함께 맞춰가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다만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파트너를 만들어준다.
사랑은 바로 알아차리는 게 아니라 천천히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노력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방향이 맞아야 한다.
첫사랑이 가장 순수한 게 아니라, 각 시기마다 그 시기에 맞는 사랑이 있다. 스무 살의 사랑과 서른 살의 사랑은 다르다. 둘 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
CEO가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완벽한 사랑'을 찾지 않는다. 대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를 찾는다.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사람.
화가와 소설가의 꿈을 포기했듯이, 사랑에 대한 환상도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오히려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사랑에 관한 거짓말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나니, 비로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보였다. 그것은 드라마나 소설 속 사랑과는 달랐지만, 훨씬 더 현실적이고 따뜻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