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전부가 아니야
스무 살 생일, 아버지가 용돈 봉투를 건네며 말씀하셨다.
"돈이 전부는 아니야. 하지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스물여덟이 된 지금에야 알겠다. 아버지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돈 이야기를 해주신 거였다.
**거짓말 #021: "돈이 전부는 아니야"**
이 말을 가장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현재 돈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냉장고에 온갖 과일이 가득했고, 거실에는 비싼 운동기구가 있었고, 친구 방에는 최신 컴퓨터와 게임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 어머니는 "우리 집은 돈보다 사랑이 중요해"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은 돈이 충분히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구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라고 했지만, 정작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후원하는 환경에서 철학할 수 있었다. 경제적 걱정 없이 사유할 수 있는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대학교 때 과외비로 한 달에 40만 원을 받았을 때와 80만 원을 받았을 때를 비교해 보자. 40만 원일 때는 매일 편의점 도시락과 라면으로 연명했지만, 80만 원일 때는 가끔 친구들과 고깃집도 갈 수 있었다. 40만 원의 차이가 만든 건 단순히 '더 많은 음식'이 아니라 '인간다운 식사'와 '사회적 관계'였다.
매슬로우가 말한 욕구 단계를 돈에 적용해 보면 이해가 쉽다. 먹을 것과 잠잘 곳, 그리고 경제적 안정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랑이나 자아실현 같은 고차원적 욕구는 사치가 된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진실이 되려면, 최소한의 기반은 갖춰져 있어야 한다.
**거짓말 #022: "성실하게 일하면 부자가 된다"**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때는 열심히 일하면 집도 사고 차도 살 수 있었어."
그래서 나도 정말 열심히 일했다. 대학교 4년 내내 과외와 알바를 병행했고, 졸업 후에도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다.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부모님 말씀대로라면 이미 집 한 채 정도는 살 수 있어야 했는데, 통장 잔고는 그리 늘어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게임의 룰이 바뀌어 있었다. 부모님이 스물다섯 살이었던 1990년대와 지금은 완전히 다른 경제 환경이었다. 그때는 정말로 성실함만으로도 중산층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무엇에 성실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지혜가 더 중요해졌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면과 절약이 부를 가져다준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초기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근면 + 절약 + 투자 + 운 + 타이밍'이라는 복잡한 방정식이 필요하다.
실제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보면, 단순히 열심히 일해서가 아니라 똑똑하게 일해서인 경우가 많다. 성실함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방향성이 더 중요해졌다.
**거짓말 #023: "돈 많으면 행복하다"**
대학 동기 중에 집안이 정말 부유한 친구가 있었다. 용돈만 한 달에 200만 원을 받았다. 나는 그 친구가 정말 부러웠다. '저 정도 돈이 있으면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만의 고민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돈으로만 볼까 봐 무서워", "내 진짜 실력은 얼마나 될까?",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돈이 많아도 고민은 있었다. 다만 고민의 종류가 달랐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은 덕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돈은 행복의 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행복 그 자체는 아니라는 뜻이다.
회사에서 연봉이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오를 때를 생각해 보자. 처음 몇 달은 정말 행복했다. 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6개월 후에는? 새로운 기준점이 생겼다. '이제 7000만 원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돈은 우리의 기준점을 계속 높인다. 끝이 없는 게임이었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쾌락 적응' 현상이다. 인간은 어떤 수준에 도달하면 금세 그것에 적응하고, 더 높은 수준을 원하게 된다.
**거짓말 #024: "돈을 밝히면 안 된다"**
한국 사회에는 돈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요즘 월세가 너무 올라서 힘들어"라고 말하면 "돈 이야기는 그만하자"는 반응이 돌아온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 인생의 하루 8시간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대부분의 선택은 경제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라니.
이는 조선시대 유교 문화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군자는 의를 좋아하고 소인은 이를 좋아한다"는 논어의 가르침이 "돈 이야기는 속된 것"이라는 관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양반들이 청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충분한 경제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아이러니한 건, "돈을 밝히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다만 표현을 우회적으로 할 뿐이다. "연봉"이라 하지 않고 "처우"라 하고, "부자"라 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이라 한다.
결국 우리는 돈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돈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거짓말 #025: "젊을 때는 돈보다 경험이 중요하다"**
스물다섯 살 때, 월급 150만 원짜리 일을 하면서도 "경험을 쌓는 중이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야근비도 없고, 복지도 없었지만 "젊을 때는 돈보다 경험"이라며 버텼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정말 좋은 경험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나?
해외여행도 돈이 있어야 갈 수 있고, 좋은 공연이나 전시도 돈을 내고 봐야 한다. 새로운 취미를 배우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모두 돈이 드는 일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 개념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경험을 통해 쌓이는 교양이나 취향도 하나의 자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자본을 쌓으려면 경제자본이 필요하다.
결국 "젊을 때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젊을 때는 싼 값에 부려먹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경험과 돈을 대립구조로 만들어서,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논리였다.
**현실은 이랬다**
돈에 대한 진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中庸)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양극단을 피하고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없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성실함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지만, 성실함 없이는 어떤 부도 오래갈 수 없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불행의 많은 원인을 제거해 준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돈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 돈을 사랑한다고 해서 속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돈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청렴한 것도 아니다.
돈은 그냥 도구다. 칼이 요리에도 쓰이고 범죄에도 쓰이는 것처럼, 돈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의 나는 돈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충분히 벌되, 현명하게 쓰자. 돈을 무시하지도, 숭배하지도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돈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돈에 관한 거짓말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나니, 비로소 건강한 돈 관계가 무엇인지 보였다. 그것은 돈을 적절히 존중하면서도, 돈에 지배당하지 않는 지혜로운 균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