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가족에 관한 거짓말들

가족은 무조건 내 편이다

by 서정환
20250605_0901_가족의 숨은 적대감_simple_compose_01jwyp6w5yfxwrkz05zbht3j4c.png

스물여섯 살, 취업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어느 저녁 집에서 이런 대화가 있었다.


"그냥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 예술 같은 거 하지 말고."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나는 "아빠는 내 편 아니야?"라고 투덜거렸다.

아버지는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편이니까 걱정되는 얘기를 하는 거야. 응원만 하는 게 편이 아니라 진짜 조언을 해주는 게 편이지."

그때 처음 깨달았다. 가족의 '편'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걸.


거짓말 #026: "가족은 무조건 내 편이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었다. "세상 누가 널 배신해도 가족만큼은 무조건 네 편이야."

하지만 자라면서 깨달았다. 가족의 '편'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는 걸.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 나는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걱정하셨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도 생각해 봐라." 그럴 때마다 나는 섭섭했다. 왜 내 꿈을 무조건 응원해주지 않으시지?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에 든 사람을 소개했는데, "성격은 어때?", "장래성은 있어?", "너를 소중히 여기니?"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내가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나중에 깨달았다. 가족이 내 편이라는 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조건 지지해 준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란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 방법론에서 의견이 다를 뿐이었다.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가족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로 다른 방법을 제시하지만, 결국 모두 '내 행복'이라는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짓말 #027: "부모님 말씀은 항상 옳다"


효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자란 우리에게는 이 말이 절대 진리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은 인생 선배이시고, 경험이 풍부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니까 당연히 옳은 말씀을 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깨달았다. 부모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부모님은 "대기업에 들어가면 평생 안정적이야"라고 하셨지만, 막상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부모님은 "집은 무조건 사야 해"라고 하셨지만, 지금 집값으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조언이 되어버렸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부모님 말씀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부모님이 살아온 시대와 지금이 다르다는 것. 부모님의 경험과 지혜는 여전히 소중하지만, 그것을 현재 상황에 맞게 번역해서 적용하는 것은 내 몫이라는 것.

지금은 부모님 조언을 들을 때 이렇게 생각한다. "아, 이런 관점도 있구나. 이것도 참고해서 내 상황에 맞게 판단해 보자."


거짓말 #028: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 속담은 "가족 관계가 다른 어떤 관계보다 소중하다"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어릴 때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하고, 가장 편한 사이일 거라고.

하지만 자라면서 발견했다. 가족 중에도 성격이 잘 맞는 사람이 있고, 안 맞는 사람도 있다는 걸. 친구 중에는 가족보다 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하지만 이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통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오히려 이런 다양성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가족에게는 가족만의 특별함이 있고, 친구에게는 친구만의 소중함이 있다. 굳이 비교할 필요도, 순위를 매길 필요도 없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피가 진하다는 건 끈끈함의 정도가 아니라, 끊어지지 않는 끈이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때로는 멀어질 수도 있고, 갈등할 수도 있지만, 결국 다시 연결될 수 있는 특별한 끈.


거짓말 #029: "가족은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


가족은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웠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비정한 사람"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도 감정인데, 감정을 의무로 만들 수 있을까?

가족 중에 정말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가끔 답답한 사람도 있고, 솔직히 말하면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게 나쁜 걸까?

나중에 깨달았다.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 가족을 아끼는 마음... 모두 다른 질감의 감정이다.

가족에 대한 감정도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책임감 있는 애정' 정도로 이해하는 게 더 현실적인 것 같다. 항상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서로의 행복을 바라고,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거짓말 #030: "완벽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가족들은 참 따뜻해 보인다. 항상 화목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문제가 생겨도 대화로 해결한다.

어릴 때는 우리 가족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우리는 가끔 다투고, 왜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왜 완벽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안다. 완벽한 가족은 없다는 걸. 모든 가족에는 나름의 문제와 갈등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게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거고,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거다.

현실은 이랬다

가족에 대한 진실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가족은 내 편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닐 수도 있을 뿐이다. 부모님 말씀도 때로는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지혜는 여전히 소중하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완벽할 필요는 없다.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작은 공동체가 가족이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가족 관계도 계속 성장한다는 것. 어릴 때의 가족 관계와 어른이 된 후의 가족 관계는 다르다. 서로 더 이해하게 되고, 더 성숙한 방식으로 사랑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가족과 편안한 관계를 유지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가끔 의견이 달라도 괜찮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각자의 행복을 응원하는 관계.

가족에 관한 거짓말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나니, 비로소 진짜 가족의 의미가 보였다. 그것은 완벽한 사랑이나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닌, 서로의 불완전함을 포용하면서도 함께 성장해 나가는 든든한 동반자 관계였다.

결국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만들어갈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더 아름다운 가족이 될 수 있다.


목요일 연재
이전 06화6. 돈에 관한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