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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을 왜 쓸까?

표정관리의 이유

by 남상석

사회적 지능과 얼굴의 언어

학교에서 학생들은 여러 시험을 치른다. 그 결과는 제각기 다르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의 지적 수행을 설명하는 일반 요인을 G 변인이라 부른다. 흥미롭게도, 집단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집단이 수행하는 과제의 효율성을 설명하는 요인을 C 변인, 즉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이라 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집단 지능이 높은 조직일수록 구성원 사이의 협력공감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활발하다. 명확한 사명과 비전, 구체적인 목표를 공유할 때 구성원은 ‘같은 배를 탄 사람’으로 느끼고, 협력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사회적 민감성(social sensitivity)이다.

사회적 민감성이란 상대의 감정과 의도를 표정, 눈빛, 목소리로 읽고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눈을 통한 마음 읽기 검사(RMI: Reading the Mind in the Eyes)’로 측정한다. 사람의 눈만 보고 그 감정을 맞추는 시험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서, 아래 사진에서 나타난 이 사람의 감정을 한번 맞추어 보길 바란다.


playful eye.jpg

1) 장난기 어린

2) 위로하는

3) 겁먹은

4) 지루한

눈동자의 움직임과 눈가의 긴장은 상대의 내면을 드러낸다. 협력하는 집단에서는 이런 민감성이 팀의 조화를 높이지만, 경쟁적인 환경에서는 오히려 불편하거나 숨겨야 할 능력이 된다.

동물의 블랙마킹

동물의 세계에서도 “시선”은 생존과 직결된다. 포식자는 먹잇감의 움직임을 읽어야 하고, 피식자는 포식자의 시선을 피해야 한다. 라쿤, 치타, 매, 판다 같은 동물의 얼굴에는 블랙마킹(black marking)이라 불리는 검은 무늬가 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블랙마킹이 의사소통, 시력보호, 위장전술 등의 여러 가지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눈 아래의 검은색은 햇빛으로부터 눈부심을 막아주어서 시력을 보호해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쿤의 검은 무늬는 야행성 동물에게 불필요해 보이지만, 아마 포식자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전술일 것이다. 매의 얼굴에서도 블랙마킹을 볼 수 있다. 블랙마킹은 방어용만이 아니라, 공격용 전술로도 보인다. 판다의 검은 눈 주위 패치는 동료 판다끼리의 인식 신호로 작용한다고 한다. 결국 블랙마킹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선을 조절하는 장치, 즉 사회적 민감성을 관리하는 도구다. 사람에게도 비슷한 장치가 있다.

Raccoons-Facial-Marking.jpg 라쿤의 블랙마킹
Hawk blackmarking.png 매의 블랙마킹
판다의 블랙 패치.jpg 판다의 블랙 패치

운동선수의 아이블랙

블랙마킹은 운동경기에서도 쓰인다. 주로, 야구 선수들과 미식축구 선수들이 사용하는데 이를 아이블랙이라 부른다. 그 기능을 알아보면, 주로 눈부심을 줄여주거나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왜 축구, 농구, 골프선수들은 아이블랙을 하지 않을까? 같은 이유라면, 이들도 아이블랙을 했었어야 한다.

운동선수들이 아이블랙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상대 선수의 시선을 피하거나 교란시키려는 이유이다. 운동경기에서 공격 선수와 수비 선수는 서로의 움직임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특히, 공을 보기 전, 상대 선수의 눈을 쳐다볼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 있는 야구경기에서 아이블랙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블랙은 상대선수의 시선을 피할 수 있게 도와준다. 투수가 아이블랙을 하고 모자를 눌러쓰면, 타자는 투수의 눈을 쳐다보기 어렵게 된다. 상대 선수의 눈보다는 발이나 공의 움직임을 먼저 보아야 하는 축구경기에서 아이블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축구에서도 페널티킥인 경우, 아이블랙은 아마 도움이 될 것이다.

야구 투수의 아이블랙.jpg 야구 투수의 아이블랙

한국어 표현, “눈이 맞다”란 두 사람의 마음이나 눈치가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싸울 때도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 이때, 서로 눈이 마주치면, 싸움이 격렬해진다. 한쪽이 눈을 내리 깔면, 승패가 결정 난다. 싸움이 일상인 동물의 세계에서, 아군은 적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하지만 적군의 시선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동물은 아예 털에다 블랙마킹을 하고 다닌다. 포식자나 피식자의 시선을 피하려는 의도이다.

“인상 쓰다”란 한국어 표현은 상당히 독특하며 통찰적이다. “인상 쓰다”란 얼굴의 표정을 찡그리거나 험악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모자를 쓰고, 가면을 쓰고, 옷을 입는 것처럼, 인상도 쓰고 벗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인상이란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표정이 아니라, 아이블랙처럼 의도적으로 쓰고 다닐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인들은 서로에게 미소를 잘 짓지 않는다. 아마,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아이블랙하듯 인상 쓰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직장생활에서 개인과제도 있지만, 협력과제도 있다. 개인과제를 잘하면, 개인이 보상을 받고, 협력과제를 잘하면, 회사, 단체, 팀 전체가 보상을 받는다. 그런데, 협력과제의 경우, 보상이 뚜렷하지 않거나, 보상의 시점이 먼 경우가 보통이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노력과 보상은 즉각적이고 뚜렷하다. 도시나 국가를 위한 시민의 노력에 대한 보상은 멀고, 뚜렷하지 않다. 보상이 개인에게 있으면, 서로는 경쟁자가 되고, 보상이 모두에게 있으면, 서로는 협력자가 된다. 협력자들 사이의 사회적 민감성은 사회 지능을 높여주는 순기능을 하지만, 경쟁자들 사이의 사회적 민감성은 피해야 하는 것으로 사회 지능을 낮추는 역기능을 한다.

만나서 서로 미소 지으면 좋은 사이, 얼굴을 돌리면 경쟁적인 사이, 자리를 뜨고 싶으면, 적대적인 사이일 것이다. 얼굴을 돌리고, 떠나고 싶지만,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인상 쓸 것이다. 잠시 동안, 인상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늘 쓰고 다니면, 본인과 사회에 역기능이 생긴다. 협력, 협동, 협조, 협업이 많아지고 서로 눈이 마주치면, 미소 짓는 사회, 그래서 전체지능이 높은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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