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의 시작
“균형(equilibrium)”이라는 말은 자연과학, 사회, 심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균형’은 우주의 질서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우주는 균형 속에서 존재하며,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을 품고 있다. 만약 경쟁하는 힘이 지나쳐 균형이 깨어지면, 부자연스럽고 질서가 무너진 ‘불균형(disequilibrium)’ 상태가 된다. 그때 우주는 스스로를 회복시키려는 힘, 다시 균형으로 돌아가려는 에너지를 작동시킨다. 동양에서 만물의 움직임과 사회적 현상을 음양의 조화로 설명한 것도 이와 같다.
평형대(balance beam) 위의 움직임은 균형과 불균형의 역학을 잘 보여준다. 평형대 위에서 움직이려면, 불균형이 있어야 한다. 완벽한 균형만을 유지하려 한다면, 어떤 동작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친 동작과 기교는 균형을 잃게 만든다. 균형의 순간은 정지가 아니라, 다음 동작을 위한 준비다. 한 번의 안정 뒤에는 반드시 또 다른 흔들림이 찾아온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대기 순환(atmospheric circulation)은 태양열과 지구의 자전, 위도의 차이로 인해 생긴 온도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공기의 흐름이다. 경제에서도 자본과 부채가 같을 때 균형 상태에 이르지만, 투자와 생산이 일어나는 순간 불균형이 생긴다. 그 불균형이 성장의 동력이 된다. 정치에서도 보수와 진보는 서로 대립하지만, 결국 역사의 균형을 이루려는 두 힘의 움직임이다. 불균형은 대립의 징후가 아니라, 새로운 균형을 향한 과정이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입식 교육에서는 문제와 답을 외우는 것이 성취의 기준이 되지만, 실제 삶에서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문제를 만나는 순간 마음은 불균형 상태가 되고, 문제를 해결하면 다시 균형을 찾는다. 이런 과정을 거듭하면서 사람은 성숙해 간다. 불균형은 성장의 흔들림이며, 그 흔들림 속에서 내면의 중심이 단련된다.
사람의 마음도 균형을 원한다. 마음은 평온과 안정 속에 머물기를 바라지만, 삶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불균형을 가져온다. 문제나 어려움을 만나면 마음은 흔들리고, 다시 평형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때 혼으로서의 사람은 ‘영적인 눈’을 통해 스스로를 비추며 통찰의 자리를 찾는다.
"통찰(洞察)"이란 사물이나 현상을 꿰뚫어 보는 밝음이다. 한자 그대로 ‘밝을 통(洞)’, ‘살필 찰(察)’이다. 영어의 ‘insight’는 ‘안(in)을 보는 시력(sight)’이라는 뜻을 가진다. 통찰은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갑자기 깨닫는 순간이며, ‘유레카(eureka)’ 혹은 ‘아하(aha) 순간’이라 부른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왕의 금관의 순도를 알아내라는 명령을 받고 오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다 목욕탕에 몸을 담그는 순간,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물의 부피 변화가 금의 부피를 알려 준다.” 그는 벗은 채 거리로 달려가며 “Eureka! Eureka!”라고 외쳤다. 불균형의 순간에서 통찰은 탄생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새로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일시적인 불균형 상태에 들어선다. 과거의 경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사람은 내면의 눈으로 새로운 질서를 본다. 그 순간이 바로 통찰의 시작이다. 균형이란 흔들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힘이다. 완전한 안정은 죽음과 같다. 살아 있는 균형은 늘 흔들리며, 그 흔들림 속에서 통찰의 조화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