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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석 Nov 01. 2021

돌아가셨다

          한국인들은 죽으면, 혼은 어떻게 된다고 믿었을까? 한국인들의 혼에 관한 생각은 유학(儒學), 특히 주희가 시작한 주자학(朱子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주자학(朱子學)은 성리학(性理學)으로도 불린다. 조선 시대 성리학자인 율곡 이이(李珥)의 정기신(精氣神)과 혼백(魂魄) 사상은 주자(朱子, 1130-1200)의 사상을 거의 닮았다(최일범, 2010). 율곡은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기(氣)가 모여 있는 것이며, 죽음이란 기가 흩어진 것으로 생각하였다. 기는 ‘모이고 흩으 짐이 있는 것으로서 우주 자연과 인간의 형체를 구성하는 질료이며, 마음 또한 기로 보았다. 율곡을 포함한 조선의 유학자들은 혼(魂)을 하늘로 올라가는 양의 기운으로, 백(魄)을 땅으로 내려가는 음의 기운으로 보았으며,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은 나누어지고 ‘생명’이라는 현상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였다(최일범, 2010).   

          이러한 혼백 사상을 믿었던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가 전해졌다.  마테오 리치는 중국에 파송된 예수회 소속 선교사로서, 전통사상인 유학을 수용하면서 기독교를 전한 사람이다. 천주실의에서, 그는 사람의 혼은 불멸하며 짐승과 크게 다르다고(論人魂不滅 大異禽獸) 주장하였다. 천주실의(天主實義)는 출간 후, 곧바로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전해졌다. 조선의 유학자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도 이 책을 읽었다. 정약용의 형제 중 하나인 정약종은 이러한 기독교 신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신해 박해로 순교한 인물이다. 정약종은 한글로 주교요지(主敎要旨)란  천주교 교리 해설서를 썼다. ‘주교요지’는 조선의 한 유학자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사람의 혼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약종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사람이 죽은 후에 몸은 썩어도 영혼은 죽지 아니한다. 짐승의 혼은 제 몸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배고프고 춥고 더운 것이 제 몸에 붙은 일만 알기에 죽으면 그 몸에 붙었던 혼도 따라 없어지고 사람의 혼은 몸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몸이 태어날 때 천주가 신령한 혼을 붙여주시니 그런 까닭에 제 몸 밖의 일도 좋아함과 싫어함이 있으니 말하자면 남이 나를 기림(칭송함)으로 내 몸이 배부를 것이 없다. 그러나 공연히 좋아하고 남이 나를 훼방함으로 내 몸이 아플 것이 없되 공연히 싫어하니 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반드시 그 몸으로 솟아나지 아니하고 혼으로부터 나온다(정인재, 재인용). 

          정약종은 죽고 썩어 없어지는 육체와 죽지 않고 썩지 않는 혼을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성경에 나오는 혼에 관한 믿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성경에서 야곱의 아내 라헬이 죽게 되었을 때, ‘혼(soul)이 떠나려 한다’는 표현을 썼다. 예수도 어리석은 부자 비유에서 ‘생명’에 상당한 뜻으로 ‘혼’이란 말을 사용했다(킹제임스 성경).

          사람을 ‘살아있는 혼’으로 보게 되면 죽음에 대한 표현도 달라진다. 사람이 죽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을 ‘살아있는 혼’으로 보면, 죽는 것은 육체이다. 육체는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신령한 혼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인들의 죽음에 대한 표현, ‘돌아가셨다’는 아주 적절하다. 고인(古人)을 앞에 두고, ‘돌아가셨다’라고 하면, ‘그 혼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셨다’라는 뜻이 아닌가?


참고 문헌 

정인재 (2012). 서학의 아니마론과 다산 심성론. 교회사연구, 39. 한국교회사연구소.

최일범. (2010). 栗谷 李珥의 死生觀에 관한 연구. 동양철학연구, 64, 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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