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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석 Jan 11. 2023

부자와 거지 나사로

왜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나사로는 천국에서 위로를 받는가?

성경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 하나가 헌데투성이 몸으로 누워서, 그 부자의 식탁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다. 개들까지도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다. 그러다가,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고, 그 부자는 죽어서 지옥으로 가게 되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 조상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시원하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기독교의 어떤 교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예화이다. 거지 나사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서 천국에서 위로를 받고, 부자는 무엇을 어떻게 해서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가? 나사로는 하나님을 믿었고, 부자는 믿지 않았는가? 부자는 악한 죄를 지었는가? 부자는 회개하지 않았는가?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하게 되지만, 이야기의 주제와는 동떨어진 질문이다.

         이 예화는 살아서 육체가 받는 위로와 고통, 죽어서 영혼이 받는 위로와 고통을 대비한다. 하지만, 이 예화는 나사로와 부자가 무엇을 어떻게 해서(아래 도표에서 ?) 천국이나 지옥에 들어가게 되었는 지를 말하지 않는다.


나사로: 살아서 거지, 병든 몸 – (?) - 죽어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

부자: 살아서 호위 호식 – (?) – 죽어 지옥에서 고통


         성경은 당연한 것을 말하지 않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이 예화에서 ‘지옥’이란 말은 나오지만, ‘천국’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위로와 천국은 당연한 가정이며 상관관계이다. 이 예화에서 교리적인 어떻게(?)는 빠져있다. 이 예화는 살아서 몸이 받는 위로와 고통, 죽어서 영혼이 받는 위로와 고통을 대비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가정하게 한다.

      이 예화는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라는 말씀과 잘 어울린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자유가 있다. 물론, 하나님의 자유는 공의와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변덕스럽거나 불공평하지 않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고생만 하다 일찍 세상을 떠나는가? 왜 사랑하는 사람이 까닭 없이 고난과 고통을 겪는가? 사람의 심정으로 느껴도, 인생의 고난, 질병, 장애, 애통, 눈물은 천국의 자비와 위로의 조건이 된다. 하나님의 마음은 바른 교리와 배치하지 않지만, 교리에 의해 제한받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의 교리보다 크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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