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과 영성, 그리고 인(仁)

by 남상석

사람에게 영성(靈性)이 있다면,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왔을까? 한자에서 영성과 가장 가까운 단어는 덕성(德性)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덕’이라는 말을 통해 영성을 드러냈다. 이름에도 덕은 자주 쓰였다. 친숙하면서도 묵직한 말이다.

"설문해자"는 덕(德)을 "밖으로는 다른 이에게 바람직하고, 안으로는 내가 얻은 것"이라 설명한다. 덕은 결국 사람의 됨됨이, 즉 그릇이다. 그렇다면 덕은 어떻게 영성과 이어지는가? 이를 다윗의 삶에서 살펴보자.

다윗, 위기의 한복판에서

아들 압살롬의 반란은 다윗 생애의 가장 큰 위기였다. 예루살렘은 평화에 젖어 있었고, 병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남아 있으면 몰살이었다. 다윗은 즉시 피난을 결단했다.

적과 동지가 갈렸다. 전략가 아히도벨은 반역에 가담했고, 그의 계략이 실행되었다면 다윗은 끝장이었다. 그때 다윗은 기도했다.
"그의 계략을 어리석게 하소서."

곧 또 다른 전략가 후세가 나타났다. 다윗은 그에게 말했다.
"돌아가라. 압살롬의 곁에 서서 그의 귀를 속여라."

후세의 계략은 아히도벨을 꺾었고, 다윗에게 하룻밤의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 하룻밤이 생명을 지켰다. 제사장의 아들들은 목숨을 걸고 소식을 전했고, 바르실래와 시바는 음식을 내주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달랐다. 다윗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예루살렘에 남아 기회를 엿보았다.

피난길에는 모욕도 있었다. 시므이는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졌다. 아비새가 칼을 뽑으며 외쳤다.
"폐하, 저자의 목을 베게 하소서."
그러나 다윗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만두라. 혹시 신께서 그의 입을 빌려 나를 꾸짖는지도 모른다."

병사들은 칼을 거두었다. 훗날 귀환한 다윗 앞에 시므이는 무릎을 꿇었고, 다윗은 그를 용서했다.

덕과 영성, 그리고 인(仁)

다윗의 태도는 단순한 정치적 처세가 아니었다. 그는 보복이 아닌 더 높은 길을 택했다. 그가 쌓아온 덕은 위기 속에서 보은과 충성으로 돌아왔다.

“德不孤 必有鄰.”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따른다. 논어)

무엇보다, 다윗은 자신을 욕하는 자에게 성급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인내는 동양 사상의 인(仁)을 떠올리게 한다. 참을 인(仁)은 사람(人)이 하늘의 뜻(一)과 자기 뜻(一)을 나란히 할 때 이루어진다.

“仁者無敵.” (어진 자에게는 적이 없다. 맹자)

이처럼 다윗의 영성은 동양의 덕과도 이어진다. 덕성은 단순한 도덕적 성품이 아니라, 하늘의 뜻과 연결된 영성의 표현이다. 다윗의 삶은 덕과 영성이 어떻게 하나로 어우러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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