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남자 1

두 번째 자리의 소년

by 트렌트

누나는 늘 반짝였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 옆에 서 있던 나는 언제나 ‘누나의 동생’으로 불렸다.

어릴 적, 아버지의 근무지 때문에 초등학교를 세 번 옮겼다.
전학 첫날마다 교실 문 앞에 서 있던 나는
언제나 낯선 공기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김영 입니다.”
그 말이 내 이름보다 더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누나의 상장으로 빼곡한 거실 한켠에서,
나는 낡은 장난감 자동차로 도로를 그렸다.
내 도로는 종이 위에서만 이어졌고,
현실의 나는 늘 그 길 끝에서 멈춰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봄,
그녀를 만났다.

작고 조용한 아이였는데,
웃을 때마다 입가에 생기는 작은 보조개가 참 따뜻했다.

“야, 너 뭐 봐?”
“응? 그냥 하늘.”
“하늘이 뭐 어때서?”
“예뻐서.”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미소 지었다.
그 웃음 하나에, 세상이 잠시 멈춘 듯했다.
그날 이후, 나는 복도 끝 창가를 지나며
그녀가 있을까 눈으로 찾곤 했다.

하지만 어린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사소한 오해로 멀어지고,
조그만 질투에 상처를 냈다.

“영 아,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그날 밤,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바다로 갔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이 오히려 위로 같았다.

차창 밖으로 흩날리던 바닷바람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자유가, 세상과의 첫 단절이 될 줄은.

1년 늦게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한 살 아래였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금세 ‘형’이라 불리며 어울리게 됐다.
“형준 형, 오늘 결석이래요. 감기 걸렸대요.”
친구들이 그렇게 농담처럼 핑계를 대줄 때면,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철없고,
공부보다 사람 냄새가 좋은 아이였다.
밤엔 피시방 불빛 아래서 세상을 배웠다.
그곳에서 만난 건 게임이 아니라,
어른이 되기 전 마지막 청춘의 불빛이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방황이 내 인생의 첫 기초공사였던 것 같다.
무너지고 흔들렸지만, 그 아래엔 분명 단단한 흙이 있었다.

그 흙 위에 나는 지금의 나를 세웠다.
그리고 여전히 짓고 있다.


〈삶을 짓는 남자〉 시리즈 예고

다음 편 ― “늦은 입학, 빠른 세상”

: ‘형’이라 불리던 고등학교 시절,
피시방 불빛 아래 웃고 울던 소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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